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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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일상/book 2021. 8. 27. 02:23
책을 집어들고 저자 소개를 읽고 나서야 어릴 적 만화책으로 읽던 를 쓴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글을 읽고 싶은데 역사서를 읽자니 딱히 꽂히는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돌고 돌아 모처럼 수필을 읽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오래된 질문』이나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했지만, 대담집 형식을 하고 있어서 전형적인 수필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영국에는 참 뛰어난 작가가 많은 것 같다는 점이다. 영국 안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중에 유명한 사람도 참 많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건 아마도 책의 글귀 중에 꽂히는 것들이 여럿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안에 담긴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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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단편집일상/book 2021. 8. 22. 12:03
토마스 만의 작품은 흡인력이 있다. 그래서 『마의 산』을 읽은 뒤로 그의 작품을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단편집을 집어들게 되었다. 단편선에는 비교적으로 그의 초기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미 단편을 쓸 당시부터 '요양'이라는 소재는 토마스 만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요양'이라는 소재는 결국 심신이 병약한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레 등장하는 구실이 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들 병약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미추(美醜), 선악, 생사에 관한 고뇌를 진솔하게 진술한다. 『마의 산』에서는 요양지의 무대가 스위스의 산악지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면, 이 단편선에는 본거지인 독일의 대척점으로 '남국'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남국'이라는 것은 로마나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지역으로 흔히 표상화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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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사사기・룻기일상/book 2021. 8. 19. 11:46
앞서 읽었던 『오래된 질문』에는 불교의 가르침에 관한 원로 생물학자와 고승들의 대담이 다루어졌는데, 곧바로 성경으로 건너오니 이야기의 맥락이 확 바뀌는 느낌이 있다. 불교에서는 피아를 가르지 말라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반면, 성경에는 피아—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시도가 아주 선명하게 부각된다. 특히 이번에 읽은 에는 그러한 기독교의 종교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모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일대에서 척척 정복전쟁을 전개해 나간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정착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살육전이 전개됐던 것 같고 이스라엘 민족과 주변 민족의 호전성이 잘 나타난다. 때문에 살생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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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일상/book 2021. 8. 17. 13:53
[성파] 중요한 건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p. 33 [데니스 노블]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질문을 해야 즉각 도움이 되는 답을 얻을 수 있어요. —p. 56 [도법] 그럼 부처님이 말하는 실재는 어떨까요? 바다와 파도는 분리될 수 없고 동시에 존재하는 거죠. 바다가 파도고, 파도가 바다고. 이걸 영원하다고 단정하면 파도의 의미가 없어지고, 허무하다고 단정하면 바다의 의미가 없어져요. —p. 71 [도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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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저편일상/book 2021. 8. 11. 02:16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오랫동안 내 서가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두꺼운 책이다. 출판사 의 창립 30주년 전집 가운데 아직까지 읽지 않은 몇 안 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여러 문학작품, 사회과학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어서, 그의 책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음에도 어쩐지 그의 이론을 얼추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원전을 읽고 나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깨닫곤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철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을 망라하여 무수히 많은 학문적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고 흔히 얘기된다. 하지만 꿈-해석이라는 분야가 이전부터 어떠한 경로를 걸어왔는지 프로이트가 서두에 밝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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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갈무리]일상/book 2021. 8. 9. 18:05
꿈의 기억 방법은 일반적으로 모든 기억 이론에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는 것을 알려 준다. —p. 50 꿈-요소들은 결코 단순한 표상이 아니라, 깨어 있는 감각의 중개를 통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이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낱말 형상과 언어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반면, 꿈에서는 현실적인 감각 형상으로 생각하고 사고한다. 게다가 꿈에서는 깨어 있을 때처럼 감각과 형상들이 외부 공간에 자리함으로써 공간 역시 의식된다. 그러므로 꿈속에서 지각 및 형상에 대한 정신의 관계는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신이 착각을 일으킨다면, 그 이유는 수면 상태에서는 지각되는 감각이 외부에서 오는지 내부에서 오는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은 객관적 실재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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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獻燈使)일상/book 2021. 7. 30. 00:53
요 근래 도쿄 올림픽이 열리면서 종종 일본 언론의 기사들을 읽다보면 일본사회가 전반적으로 국수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주변국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부풀려 일반화한다든가 선수들의 플레이를 비하하고, 자국 정부의 외교적인 실언이나 판단착오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합리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일본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글은, 비록 지금은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일본인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소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무메이(無名; "이름없음")라는 병약한 꼬마의 성장 없는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데, 시점이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지금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소설이 발표된 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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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소돔과 고모라 II일상/book 2021. 7. 22. 17:19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만연체가 많다. 이 부분은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우선 프랑스어의 운율을 모른 채 번역본을 읽을 때는 만연체가 함축한 리듬을 파악하기 어렵다. 각주에 프랑스어로 어떤 언어유희가 활용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유머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다 만연체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밀도있게 이뤄지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한 권을 다 읽어도 며칠에 걸친 스토리이거나 기껏해야 한 계절에 걸친 스토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달리 말하면 프루스트는 '시간'을 귀중한 물건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듯 아주 치밀하게 써내려간다. 한참 몰입해서 읽고 있는데 문득 아직 한 장면이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