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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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세대일상/book 2021. 12. 15. 13:25
제목을 봤을 때는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2021년에 쓰인 소설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후 독일에서 쓰인 소설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라는 작가도 전혀 몰랐던 작가였는데, 제목(Generation ohne Abschied)이 주는 독특한 인상 때문에 일단은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26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가 묻어난다. 단연 보르헤르트의 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는 전쟁에 관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 자신이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었고, 자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도의 내가 그의 글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때문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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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용법(La vie mode d'emploi)일상/book 2021. 12. 13. 02:26
세 번째 조르주 페렉의 소설이다. 『사물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이어서 『인생사용법』. 배송된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이 책이 꽤나 두껍다는 것을 알았다. 앞의 두 책은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인생사용법』도 그 정도 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책이 생각보다 커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해보니 두께만큼 가격이 제법 나간다. 여러 책들을 함께 주문하다보니 가격이며 규격정보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부차적이기는 해도, 이 두께에 내용이 매우 난해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책의 말미에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매우 지엽적인 사물들이나 미시적인 대상들에 천착하고 있다. 가령 매 에피소드의 서두마다 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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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상/book 2021. 11. 29. 10:52
오늘 새벽 운동을 하다가 오늘이 11월 29일인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이 인삿말로 다음달에 보자고 하는데 잠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왜 벌써 다음달이지?!!)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바쁜 건 바쁜 거지만 11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북리뷰를 하나 더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소설은 모처럼(?)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다. 현대 일본문학이 밍밍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허무주의가 싫다 싫다 하면서도 무라카미의 글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이참에 궁금해져서 리스트업을 해보자면,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코끼리의 소멸 단편집』, 『노르웨이의 숲』, 『어둠의 저편』,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 그리고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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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삶과 죽음일상/book 2021. 11. 20. 11:52
이번 달 들어서 읽은 두 번째 책이다. 번역도 잘된 책인데 처음 4분의 1정도를 읽고 그만 내려놓을까도 생각했다.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글에 프랑스사람들은 비유나 메타포를 많이 집어넣어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서구 가톨릭이 동쪽의 비잔티움 문화권보다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 이야기까지는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실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눌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잔티움 세계 너머 유럽 기준으로 더 동쪽으로 가면, 그러니까 이슬람 문명에서는 마호메트에 대한 소묘나 조각이 엄격히 금지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그래서 회화보다는 캘리그라피나 모자이크가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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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일상/book 2021. 11. 3. 09:27
얼마전 한 주 정도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결정내리지 못한 채 차일피일 미뤄온 문제들도 있었고 해야 할 거리도 많았다. (또는 많다고 느꼈다.) 잠시 숨돌릴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지난 주 집어든 책이 「쇼코의 미소」다. 최대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던지라, 무라카미의 짧은 에세이라도 원서로 읽어볼까 했지만 서점에 소개된 게 그리 많지 않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페렉의 「인생사용법」은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두께가 꽤 나가서 조금 읽다가 말았다. 결국 번역을 거치지 않은 우리말이면서 서정적인 서사를 담고 있을 것 같은 「쇼코의 미소」로 손이 갔는데, 사실 이 책은 성석제의 글과 더불어서 꽤 오래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다. 책의 말미에 문학평론가는 무덤덤하게 꾸밈없이 글을 쓰면서도 흡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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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일상/book 2021. 9. 23. 14:19
역사책을 읽는 건 언제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사실은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상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나 인물을 달달 외우지는 못한다. 그냥 역사책을 읽는다는 건, 여러 제국들의 흥망성쇠,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거대한 변화들을 접한다는 것이고 그 자체가 흥미를 당긴다. 중앙아시아사에 관한 책은 이전부터 읽어보려고 몇 권을 봐두었었다. 결국 피터 B. 골든의 「중앙아시아사: 볼가강에서 몽골까지」를 택한 건 가장 간명하게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엽적인 시기 또는 국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개괄적인 글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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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일상/book 2021. 9. 11. 21:36
처음으로 접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이다. 원래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책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마침 남아 있는 재고가 이 책뿐이었다. 총 스물다섯 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언뜻 기괴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글들이라 읽는 재미가 있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은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편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작위적으로 가르는 한 인물의 광기를 통해 인간의 합리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단평에 X넣기」, 「작가 싱엄 밥 씨의 일생」, 「블랙우드식 글쓰기」, 「곤경」은 젠체하면서도 속물적인 출판업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들이다. 「기묘천사」, 「종탑의 악마」, 「오믈렛 공작」, 「봉봉」은 재치있는 방식으로 악마를 묘사하고, 악마와 주인공의 대화 속에서 우리에게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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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일상/book 2021. 9. 8. 22:45
7-8월 두 달간 틈틈이 읽었던 책. 애당초 완독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는데, 당분간 이 책을 더 읽을 겨를은 없을 것 같아 우선 갈무리 하는 걸로. 책에서는 인간과 조직의 본성을 크게 세 측면에서 조망한다.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기회주의(Opportunism), 자산 특유성(Asset Specificity). 윌리엄슨은 이 각각의 측면에서 인간(그리고 조직)의 계약적(contratual)인 속성을 분석한다. 그 다음 '기업'이라는 조직을 시장이라는 분석틀에서 이해해오던 종래의 관점을 탈피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라는 분석틀을 통해 기업에 내재된 (또는 필요한) 거버넌스적 요소들을 설명한다. Paribus Ceteris라는 전제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