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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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와 몸일상/book 2022. 10. 11. 22:02
모처럼 읽은 독일문학이다. 근대 독일문학이라고 하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일관되고 선악(善惡)의 구분도 선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열두 편의 짤막한 소설로 엮인 『무용수와 몸』의 등장인물들은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다. 길지 않은 글 안에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편집증적이고 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논리가 다음에 어느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타이틀로 쓰인 『무용수와 몸』도 무용수 자신의 육체를 낱낱이 해부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민들레꽃 살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공원을 산책하던 한 중년 신사가 길 위에서 발견한 한 송이 민들레꽃을 지팡이로 뭉텅 날려버린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무심코 저지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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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단편집일상/book 2021. 8. 22. 12:03
토마스 만의 작품은 흡인력이 있다. 그래서 『마의 산』을 읽은 뒤로 그의 작품을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단편집을 집어들게 되었다. 단편선에는 비교적으로 그의 초기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미 단편을 쓸 당시부터 '요양'이라는 소재는 토마스 만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요양'이라는 소재는 결국 심신이 병약한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레 등장하는 구실이 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들 병약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미추(美醜), 선악, 생사에 관한 고뇌를 진솔하게 진술한다. 『마의 산』에서는 요양지의 무대가 스위스의 산악지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면, 이 단편선에는 본거지인 독일의 대척점으로 '남국'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남국'이라는 것은 로마나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지역으로 흔히 표상화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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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Der Zauberberg)-中일상/book 2020. 12. 12. 00:08
모순덩어리인 두 가치관의 충돌. 역사의 진보와 이성의 힘을 믿지만 바로 그 합리주의에 대한 맹신에 빠진 ‘교육자 세템브리니’. 영원하고 초자연적인 절대적 세계를 염원하지만 이러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 악(惡)을 수단으로 삼는 것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사제 나프타’. 인간의 오만과 종교의 방종. 살(肉)로 된 삶과 피(血)로 된 죽음. 전진하는 시간과 반동(反動)하는 영원. 형식과 로고스. 자유와 금욕. 낙관하는 인간과 준엄한 신의 심판. 인간의 해방을 가져온 르네상스, 욕구를 철창에 가둔 중세의 스콜라주의. 각양각색의 빛과 모두를 집어삼키는 어둠. 눈을 멀게 하는 빛과 마음의 고요를 가져오는 어둠. 주저하는 인간과 신의 은총. 죄와 처벌. 이성과 감성. 애국주의에 눈 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경도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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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Der Zauberberg)-上일상/book 2020. 12. 6. 00:01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독일인 특유의 분석적인 글쓰기가 느껴지면서도 분방(Decadance)한 느낌도 섞여 있다. 또 휴양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로부터는 당시 독일의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소설이 쓰여진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4년도다.) 이러한 독일적인 정신은 소설 속 이탈리아인 세템브리니와 대조적이다. 똑같이 민족주의의 열기가 나라를 뒤덮었지만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의 민족주의는 보다 급진적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 현자(賢者) 세템브리니는 르네상스의 본고장(북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온 사람답게 인본주의적인 견해로 한스 카스토르프를 여러모로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앞으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더 지켜봐야겠다!!:P 여행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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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일상/book 2020. 4. 13. 17:52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영화 에 은희가 교습소의 선생님에게 건넸던 책이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선과 악을 대립시키는 헤르만 헤세의 서술방식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헤르만 헤세는 단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읽어보았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손으로 꼽아보다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모두 좋은 책들이지만, 헤르만 헤세의 세계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작품이 아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읽었더랬다. 헤르만 헤세의 서적이 꽂힌 구역에서 뜬금없이 집었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이 명징하게 반대항을 이루며 음과 양처럼 서로를 휘감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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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걸음으로일상/book 2020. 2. 28. 00:33
이 책을 집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를 읽으면서 몇 가지 독일 현대소설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중 귄터 그라스의 이름은 리스트의 가장 상단에 있었다. 토마스 만의 도 읽어보고 싶었지만—심지어 읽을 요량으로 이미 사놓은 두 권의 책도 있다—엄밀히 말해 그는 오스트리아 작가다.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었지만, 이후 라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나치 행적을 고백한 문제적 인물, 귄터 그라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렸던 그는 전후 독일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귄터 그라스의 글은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떠나서, 응당 세계적인 고전이 갖춰야 할 보편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연 그의 대표작이라 할 도 두 번을 펼쳐 두 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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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변신, 시골의사 外일상/book 2019. 9. 28. 23:06
프란츠 카프카의 글은 예전에 그림책으로 을 읽어본 것이 전부다. 이 앞에 조르주 바타유의 소설을 읽었다보니 가능하면 새로운 장르―키에르케고르를 주제로 한 책―를 읽으려다, 최근 프란츠 카프카와 관련된 연극 한 편을 예매해 둔 게 있어 미리 카프카의 글을 읽어두기로 했다. 또한 최근에 읽은 여러 책에서 유달리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인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어두고 싶은 생각도 있던 차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 참으로 독특하다. 법학을 배운 그의 이력이 큰 몫을 했겠지만 '법(法)'을 주제로 한다는 것부터 이색적이다. 관료조직으로서 법행정의 무사안일함, 요제프 K.라는 인물의 법에 대한 인식, 법해석 논쟁(문지기와 시골남자의 일화!!), 이러한 틀 안에서 개인의 일탈과 심리의 변화,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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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일상/book 2018. 11. 18. 20:33
대학로에 있는데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다. 마로니에 공원 근처의 건물 안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 서점을 향했다. 생각보다 혜화역 일대에 서점이 많지는 않았고, 알라딘은 거리가 꽤 되었다. 하릴없이 이음책방으로 향했는데, 지하에 자리잡은 아담한 서점이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를 읽을까 생각했지만, 최대한 가벼운 책을 고르자는 생각에서 발견한 것이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가 없다;; 책은 구 동독에서 거주하던 한 여성이 독일통일을 전후하여 겪는 이야기로, 다분히 자전적인 성격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줄곧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이라는 독일 영화였다. 영화는 동독에 사는 한 가족이 베를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