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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변신, 시골의사 外일상/book 2019. 9. 28. 23:06
<소송, 변신, 시골의사 外/프란츠 카프카/열린책들>
프란츠 카프카의 글은 예전에 그림책으로 <변신>을 읽어본 것이 전부다. 이 앞에 조르주 바타유의 소설을 읽었다보니 가능하면 새로운 장르―키에르케고르를 주제로 한 책―를 읽으려다, 최근 프란츠 카프카와 관련된 연극 한 편을 예매해 둔 게 있어 미리 카프카의 글을 읽어두기로 했다. 또한 최근에 읽은 여러 책에서 유달리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인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어두고 싶은 생각도 있던 차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 참으로 독특하다. 법학을 배운 그의 이력이 큰 몫을 했겠지만 '법(法)'을 주제로 한다는 것부터 이색적이다. 관료조직으로서 법행정의 무사안일함, 요제프 K.라는 인물의 법에 대한 인식, 법해석 논쟁(문지기와 시골남자의 일화!!), 이러한 틀 안에서 개인의 일탈과 심리의 변화, 그리고 작가의 문학관이 드러난다. 기소 내용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피고인의 시각에서 이 모든 문제의식들이 다뤄진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점이다.
어느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흥미로운 글들이었고, 특히 선고(Das Urteil)에서 <이 순간 다리 위에서는 그야말로 끊임없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라는 말로 끝맺는 마지막 대목은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해설을 보고 나서야 숨은 뜻―작가로서의 자아와 세속적 자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프란츠 카프카 개인이 느꼈던 내적 고뇌―을 알게 되었지만, 불현듯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마음(こころ)」에서 오래 끌어왔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스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변신」은 다시 읽어도 주인공(완전히 소외당한 샐러리맨)에 200% 감정이 이입되었고, 그밖에 「시골의사」에 담긴 짤막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에피소드와 구절들을 두고두고 찾아 읽어볼 만하다.
「이 법정의 성격이라는 게 말입니다, 이를테면 무고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지한 사람까지도 유죄 판결을 받게 하는 거 아닌가요?」
— p. 73
법정에서 벌어지는 재판 과정은 하급 관리들조차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처리한 안건이 향후 어떻게 전개되는지 제대로 다 추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법적인 일은 그들 시야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뿐,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그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소송의 개별 단계나 최종 판결 그리고 판결 이유 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하급 관리는 접할 수가 없다. 이들은 소송 중에서 법이 정한 부분만 관계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 이를테면 자기들이 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대개 변호인들만큼도 모른다.
— p. 151
이것은 참으로 특이한 건데―피고인들은 거의 누구나, 아니 아주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까지도 소송 과정에 돌입하기가 무섭게 뭔가 개선할 점을 생각하며 대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 다른 데에다 쓰면 더 좋을 시간과 정력을 말이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그냥 만족하는 것이다. 설령 소소한 몇 가지를 개선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해서 미래의 소송들을 위해 득이 될 몇 가지를 이루었다 해도, 결국 언제나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만 노리는 관리들의 이목을 끌어 자기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제발 괜히 이목을 끌지 말자! 늘 침착해야 한다. 아무리 신경에 거슬려도! 그리고 한번 잘 통찰해 보라. 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늘 부유하는 상태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누가 자기 자리에서 독자적으로 뭔가 별화를 꾀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자기 발밑의 바닥을 치워 버리는 꼴이 되어 자기 자신만 추락하고 만다는 것을. 반면에 거대한 조직은 사소한 방해를 받는 수난 얼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가 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아니, 그러지 않으면 이 거대한 조직은 전보다 훨씬 폐쇄적이 되거나, 훨씬 더 경계를 하거나, 훨씬 더 엄격하거나, 훨씬 더 사악해질 것이다.
— p. 152~153
「정의의 여신은 차분하게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저울이 흔들려서 좋은 판결을 내릴 수가 없잖아요.」
— p. 185
<피의자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죄와 함께 언제라도 저울 위에 놓여 저울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 246
「그러니까 나는 법원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이오. 내가 당신한테 뭘 원하겠소? 법원은 당신한테 아무것도 원하지 않소. 당신이 오면 받아 주는 거고, 당신이 가면 가게 놔두는 거요.」
— p. 288
저게 누구지? 친구인가? 좋은 사람인가? 동정을 느낀 사람인가?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한 개인인가? 모든 사람인가? 아직 도움이 가능한가? 까먹고서 제기하지 못한 이의 같은 것이 아직 있을까? 분명 그런 것이 있을 거다. 논리가 아무리 요지부동이라 해도, 살고자 하는 사람을 당하지는 못한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판사는 어디 있는 걸까?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상급 법원은 어디 있는가?
— p. 296
우리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인생이란 너무나 짧은 거야.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삶이란 짧게 축소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령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 즉 젊은이가 어떻게 말을 타고 이웃 마을에 갈 결심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는 도중에 불행한 일을 당할 위험은 완전히 별도로 친다 하더라도, 평범하고도 행복하게 흘러가는 삶의 시간이 그렇게 말을 타고 가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도 않고 말이야.」
— p. 468
나의 열한 번째 아들은 섬세하다. 아마 나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유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약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말하자면 그는 때때로 힘차고 단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럴 때도 그가 약하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그의 근본적인 특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수치스러운 약함이 아니라, 우리의 이 대지 위에서만 약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늘을 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약한 모습이 아닐까? 몸이 흔들리고 자세가 불확실하며 날개를 푸드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은 그런 종류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아버지는 그런 특성이 기쁘지 않다. 정말이지 그러한 특성은 가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p. 481~482
제가 출구라고 말하는 뜻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자못 걱정이 됩니다. 저는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일부러 자유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도 자유라는 이러한 위대한 감정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쩌면 원숭이 시절에 그것을 알았을지도 모르고, 저는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 관해 말하자면 저는 그때도 현재도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사람들 중에는 자유라는 말에 속는 경우가 너무 허다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여기듯이, 그에 상응하는 환멸도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p. 497
여러분, 이렇게 해서 저는 배웠습니다. 아, 꼭 배워야 한다면 배우는 겁니다. 출구를 원한다면 배우는 겁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배우는 겁니다. 채찍을 들고 자기 자신을 감시합니다. 조금이라도 하기 싫어하면 채찍으로 마구 후려치는 겁니다. 이리하여 원숭이의 속성은 당황하여 곤두박질치며 저에게서 부리나케 도망쳐 나갔습니다. 그 바람에 저의 최초의 스승이 거의 원숭이처럼 되어, 이내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보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그 후에 얼마 안 가 다시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 p.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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