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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일상/book 2019. 10. 1. 22:15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김동욱 / 김영사>
건축과 관련된 책을 모처럼 읽게 된 것은 가까운 이웃나라들을 방문할 때마다 미묘한 건축물의 차이를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사책에서 배웠던 우리나라 건축물에 대한 막연한 찬탄을 떠나,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교류했던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며 보다 객관적으로 우리 건축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주심포(柱心包)와 다포(多包)를 다루는 공포(拱包)와 화반(華盤) 파트는 여전히 어렵다.
고인돌에 뿌리를 둔 우리의 유서깊은 석탑 문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가람배치를 비롯한 중정(中庭)에 대해서는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중국은 장강을 기준으로 이북과 이남의 건축 양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 일본에서는 지진에 대비해 일찍이 이중구조로 지붕을 얹었다는 것은 새로 배웠다.
창호(窓戶)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로운데, 그 중 하나는 중국과 한국에서는 창살을 밖에 두고 창호지를 건물 안쪽에 덧대 외부에서 바라다보이는 미관을 중시한 반면 일본에서는 창살을 방으로 향하게 하고 창호지를 오히려 건물 바깥 쪽에 붙여 방안에서 창호의 미관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질문으로 남겨놓는데, 내 (상상에 가까운?) 생각은 그렇다. 타인의 시선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일본인들도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만큼은 외부인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미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 창호지를 밖에서 감싸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간 나는 우리의 옛 건축물들이 참 좋다. 단아(端雅)해서 좋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부담이 없다. 20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야 의미있는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도 둘러볼 곳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누각(樓閣)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데, 아직까지 부석사(浮石寺)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럽게도 생각된다. 얼마전 창녕을 다녀오면서도 화왕산과 그 안의 관룡사를 다녀올 생각을 못했던 것도 그런 관심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옛 건축물들이 당장에 엄청 달라 보이지는 않겠지만, 건축물이 담고 있는 옛 이야기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일본인들이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은 잘 알려진 점이지만, 그것은 생선회를 뜨는 데서나 건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하겠다. 그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강하고 규칙을 지키는 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생활을 여러 면에서도 엿보이고 집을 짓는 데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런 특성은 한편으로는 엄격하게 정돈되지 못하고 치밀하지 못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 있는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건축의 경우를 보면 동일한 형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의도적으로 획일성을 피하려는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공포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포는 많은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큰 보자기 같은 포를 짜게 되므로 작은 부분들이 서로 동일한 크기나 형태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건축의 공포는 반드시 이런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불규칙한 세부들이 조합을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또 동일한 형태의 공포를 다른 건물에서 반복하는 경우도 거의 볼 수 없다. 화반의 경우에는 기능이나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변형이나 개성을 드러낸 창작이 훨씬 자유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 화반은 개성이 강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한국 건축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셈이다.
―p. 165~166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한반도에서 중국과 달리 의자가 일상생활에서 이용되지 않았던 배경에는 온돌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주희(朱熹) 같은 중국 송대 학자들을 흠모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본받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성리학자들도 주희처럼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은 따라 하지 못했다. 일단 온돌방이라는 곳이 침대나 의자를 둘 수 있는 여지를 몰아낸 것이 컸다고 하겠다.
―p. 218
전통적으로 온돌방의 실내는 바닥이고 벽이고 천장이고 전체를 종이로 싸바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바닥은 두터운 장판지를 깔고 벽과 천장은 흰 도배지를 바르는데 창무틀이나 기둥도 모두 종이로 감싸서 실내에서는 종이 외에는 다른 것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반면에 마루 쪽은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마루방의 벽은 판자를 대거나 흙과 모래를 섞어 바른 사벽으로 마무리된다. 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서 약간 구부러지고 옹이가 드러난 서까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도록 한다. 온돌방이 사면이 종이로 감싸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마루방은 바닥, 벽, 천장의 재료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런 대조가 이루어내는 건축 공간의 극적 효과야말로 한국 건축이 이루어낸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하겠다.
―p. 226~227
16세기쯤 와서 온돌과 마루는 지방 사대부 계층의 건물에 널리 퍼졌는데, 그 배경에 성리학적 가치관이 한몫을 했다. 주희로 대표되는 중국 송대 성리학자들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바른 모습을 추구하며 치열한 자기 수련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그 모습은 그대로 조선의 선비들의 지표가 되었다. 이들 성리학자들은 장수(臧守)와 유식(遊息)이라는 두 가지 자세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장수란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자세를 가리키며 유식은 장수에서 생긴 긴장과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을 말한다.
16세기 선비들은 방문이 꼭꼭 닫히고 폐쇄적인 온돌방을 장수에 적합한 공간으로 삼았으며 벽이 트이고 개방적인 마루를 유식 공간으로 삼았다. 온돌과 마루는 사대부들의 수양 공간으로 더할 수 없는 최적의 실내를 제공한 것이다. 사대부 계층은 이후 독점적으로 고위 관직을 이어가면서 양반으로 자리 잡아갔으며 양반들은 그들의 살림집에도 적극 온돌과 마루를 수용했다. 이제 온돌과 마루는 양반 주택을 상징하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발전한 것이다.
―p. 231
중국 건축의 조각 장식이 화려함에 있어서나 세부의 정교한 가공에 있어서나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라고 하겠다. 그 양상은 마치 명·청대에 정점에 도달한 기름지고 호화로운 중국 음식을 연상시킨다. 지난 2013년 겨울에 우리나라의 김장 문화와 일본의 와쇼쿠(和食)가 각각 유네스코가 정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김장 문화란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 문화를 지칭하므로 그 주체는 김치인 셈이고 와쇼쿠는 일본의 전통적인 간단한 식사를 지칭한다. 김치는 담백한 절임 배추에 각종 양념이 잘 버무려지고 일정한 숙성 단계를 거친 발효 음식이어서 한국인의 품성에 잘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와쇼쿠는 화려한 색상에 일정한 크기로 잘라낸 정갈한 음식을 예쁘게 꾸민 작은 그릇들에 정돈해 놓아 일본인의 취향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두 나라 건축의 채색이나 장식 역시 이런 분위기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한국 건축의 단청이나 조각이 김치처럼 거친 듯하면서 오랜 세월의 연륜을 지닌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면 일본의 그것은 와쇼쿠에서 보듯이 색상이 밝고 명료하면서 규격에 잘 맞춘 치밀하고도 화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p. 307~308
경북 영천 은해사 백흥암은 산간 깊은 곳에 있는 암자 같은 작은 사찰이다.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이 절의 중심은 물론 네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인데, 좌우 승방과 선당은 바짝 거리가 당겨져 있고 북쪽 극락전은 상대적으로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아 있어서 중정은 날카로운 긴장감을 자아낸다. 반면에 남쪽은 다섯 칸의 여유 있는 누각이 탁 트여서 잔뜩 긴장되었던 분위기를 풀어준다. 이런 대범함을 지닌 공간은 기둥의 치수나 열심히 따지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창문을 만드는 데나 열심인 기술자들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부의 정교한 가공을 뛰어넘어 더 큰 건축의 공간을 만드는 지혜와 경험을 갖춘 진정한 장인이 아니고는 이루어낼 수 없는 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 후기 불교 사원은 그런 진정한 장인들이 만들어낸 건축 세계였다고 하겠다.
―p. 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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