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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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인상일상/book 2020. 6. 6. 23:19
샌드위치에 커피로 저녁을 떼우는 날이다. 저녁식사 따로 카페에서 독서하는 시간을 따로 할애하기 아깝다 싶은 날은 종종 간소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조금씩 살이 불어나니, 운동은 못하더라도 식사는 거창하게 하지 않겠다는 핑계도 된다. 이날 내 가방에 들어 있던 책은 레몽 루셀(Raymond Roussel)의 이다. 알제리와 서아프리카, 넓게는 중앙아프리카까지 프랑스의 식민국이 많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가 를 통해 태평양 군도의 부족문화를 해부했던 것처럼 문화인류를 다룬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좋아했었다는 작가답게 범상한 내용이 아니다. 난해해서 초반에는 독서의 맥이 자꾸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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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일상/book 2020. 5. 3. 21:16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짧다. 아이의 시선에서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던 글,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눈동자에서 세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글이었다. 삶을 비관하고 자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모모(모하메드)와 같은 꼬마에게만 가능한 것일까.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감정―그것이 애정이든 불편함이든 무심함이든―을 안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은 모모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담백해야 하고 간결해야 한다. 삶을 얻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삶 자체가 부정(否定)당할 뻔했던 소년이 삶이라는 만화경을 향해 가슴 펴고 마주하는 모습, 그 천진하고 개구진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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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일상/book 2020. 5. 1. 21:50
버지니아 울프의 을 읽은 뒤 이 책을 집어든 것을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 해야할지…… 집을 나서며 가장 얇은 책을 고른다는 것이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 이전에 읽다 만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을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 때문에, ‘사건의 반전(反轉)’이나 ‘인식의 환기(喚起)’가 압축적으로 담긴 글을 잠시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이 책만큼 어떠한 인식을 환기시키는 글도 없지만. 임신 중절을 시도하는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과 매끄럽게 이어진다. 글에는 뱃속 아이의 아빠에 대한 부분이 사실상 도외시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화자의 행위와 감정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차우셰스쿠 독재통치 하 불법적으로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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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Les choses)일상/book 2020. 3. 31. 02:51
사실 이 책을 이렇게 후딱 읽을 줄은 몰랐다. 카페 마감시간을 1시간 반 여 앞두고 140여 페이지 되는 이 책을 휘리릭 읽었다. 속독을 한 건 책을 얼른 읽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던 생각에서였는데, 그것도 타이밍을 잃어서 다 읽은 책을 그냥 고스란히 들고 왔다;; 120% 내 상황을 잘 나타내준 소설이었고, 아마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다 느낄 법한 내용이었다. 사실 묘사가 너무 정확해서, 좀 더 장편소설이거나 아니면 연작이기를 바랐을 정도다.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뿌리부터 부자유하다는 느낌. 소확행을 바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자이지 못한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분노를 느끼는 일상.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듯하지만, 행여 현재의 일상이 기획한 구조로부터 유리(遊離)될까봐 노심초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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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일상/book 2020. 1. 3. 09:58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매듭을 짓는 이 소설은, 분명 다른 스토리이긴 하지만 비꼬는 투(sarcastic)의 문체가 박지원의 을 떠올리게 한다. 특권층의 허례허식과 민낯을 우회적으로 폭로하는 과 마찬가지로, 에서는 순진한 낙관주의가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 허무맹랑할 정도로 거침없이 그려낸다. 어느 귀족 집안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캉디드(Candide)라는 인물은 성채에서 쫓겨난 뒤 퀴네공드 공주를 찾아 콘스탄티노플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한 여정을 겪는다.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내는 방식을 불사하면서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볼테르의 의도는 무엇일까. ‘캉디드(Candide)’라는 말처럼 우리는 천진(天眞)한 마음으로 낙관주의를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라이프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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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일상/book 2019. 9. 22. 03:15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을 연상시켰던 작품. 조르주 바타유는 인간의 나약하고 비루(鄙陋)한 근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불가능의 불가능. 인간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 신을 그렇게 추앙하는 우리의 세계는 온갖 죄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감정은 오직 살갗 위에서만 겉돈다. 이를 만회(挽回)하기 위해 우리는 어설픈 낱말을 조합해 시(詩)를 만들어 내지만 결국은 다다를 수 없는 세계의 그림자에 머물기에 문학은 곧 불가능이다. 얼핏 보면 자조(自嘲)하는 글 같지만, 오히려 자조에 흠뻑 빠져들지 않고 각성하는 작품, 「불가능」. 신랄하면서도 내밀한 긴 시 한 편을 읽은 것 같았다. 한계의 감정(결정적인 무력감)이 결여된, 세상 잘 만난 존재들을 나는 증오한다.―p.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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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일상/book 2019. 7. 19. 22:53
Entraînée par le silence, une porte s'ouvre à reculons.침묵에 인도되어 문이 반대편으로 열린다. 살바도르 달리 외에 이만큼 아방가르드한 예술가가 있다는 사실은 책을 주문하려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보다 책은 덜 읽고 있는데 어쩐지 요즈음 더 이성을 잃고 책을 주문하고 있다=_=) 여하간 막스 에른스트가 기본적으로 화가라는 것도, 이 작품이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 삽화집이라는 것도 책의 첫 장을 열어젖히고 나서야 알았다. 책의 제목부터가 대단히 실험적이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La femme cent tête)」 또는 「머리가 없는 여인(La femme sans tête)」이라는 중의적인 언어유희. 이 책의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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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일상/book 2019. 7. 17. 21:28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처럼 서가(書架) 사이를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책.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을 찾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어쩐 일인지 번역이 다양하지 않은 듯하다) 장 콕토가 에디트 피아프의 절친한 친구였듯, 이 짧지만 강렬한 글은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그린 의 비장한 느낌을 담고 있기도 했고, 히치콕 트뤼포의 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심술'을 가득 담고 있기도 했고, 또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만큼 돌발적인 방식으로 유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욕망을 담고 있기도 했다. 제라르와 폴 사이에서 내 유년시절 깊이 가라앉아 있던 우울감, 경쟁심, 고집, 야비함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작품. 그러나 5학년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제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