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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일상/book 2020. 1. 3. 09:58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매듭을 짓는 이 소설은, 분명 다른 스토리이긴 하지만 비꼬는 투(sarcastic)의 문체가 박지원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한다. 특권층의 허례허식과 민낯을 우회적으로 폭로하는 <양반전>과 마찬가지로, <캉디드>에서는 순진한 낙관주의가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 허무맹랑할 정도로 거침없이 그려낸다. 어느 귀족 집안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캉디드(Candide)라는 인물은 성채에서 쫓겨난 뒤 퀴네공드 공주를 찾아 콘스탄티노플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한 여정을 겪는다.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내는 방식을 불사하면서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볼테르의 의도는 무엇일까. ‘캉디드(Candide)’라는 말처럼 우리는 천진(天眞)한 마음으로 낙관주의를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라이프니츠의 예정설을 신봉하는 팡글로스 선생은 어떤 부조리와 불합리 앞에서도 꿋꿋하게 인간의 선(善)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그야말로 하녀 파네트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성에서 쫓겨나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매우 압축된 스토리 안에서 불가리아의 전쟁터 한복판에도 끌려나가보고, 포르투갈에서 화형식을 목격하기도 하고, 신부회를 격파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에 소집되어 보기도 하고, 베네치아에서 폐위된 여섯 왕을 알현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여럿 죽인 캉디드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면서도 퀴네공드 공주를 찾아헤맨다. 그러면서 팡글로스와 캉디드는 여전히 피력―이라 쓰고 정신승리라 읽는다―한다. 인간은 착하고 삶은 좋은 것이라고. 과연 이 스토리 안에서 유토피아라고 할 만한 곳이 등장하니 그곳은 엘도라도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우한 현실세계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일부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더 놀랍다.
궁금증이 드는 대목은,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제창했던 볼테르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점이다. 인간 이성을 불신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내재된 나약함과 악함 때문에? 사실 서두의 팡글로스의 가르침에서부터 그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라이프니츠 식 세계관임을 알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의견에 따르면 악(惡)이라는 것은 선(善)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마치 그림자가 있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는 신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이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라 칭한다. 연장선상에서 신이 마련한 이 공간에서 악은 단지 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하지만 캉디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이라는 게 과연 최선이 맞는가 의심이 들만큼 악은 일상적이다. 볼테르의 빈정대는 태도는 바로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안이한(?) 세계관을 겨눈 것이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팡글로스와 정반대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마르틴은 어떤 악(惡)을 보아도 무덤덤하다. 물론 그런 냉소주의적인 태도도 지양해야 하겠지만, 캉디드적인 낙관주의도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애매모호한 중용(中庸)이 될 것인가. 그런 어중간함이 싫어 굳이 저울질하자면 어쩐지 볼테르의 주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건 왜일까.
「선생은 원죄를 믿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그려. 만일 모든 것이 최선이라면 타락이나 벌도 없었다는 말이 되니까요.」
이 말에 팡글로스는 한결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각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인간의 타락과 저주는 최선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자 포리가 말했다.
「그럼 선생은 자유 의지를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외람된 말씀이오나 자유 의지는 절대적 필연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그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의지란...」
— p. 34
「이 세상 어디서나 힘없는 자들은 힘센 자들을 죽도록 증오합니다. 막상 그 앞에 가면 벌벌 기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힘센 자들은 힘없는 자들을 가축 취급하지요. 고기와 털을 내다 팔려고 기르는 가축 말입니다. 1백만이나 되는 살인자들이 떼를 지어 유럽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몰려다니면서 조직적으로 살인과 도적질을 일삼습니다. 정당한 직업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요. 평화롭고 예술이 꽃피는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탐욕과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있습니다. 그 폐해는 포위 공격을 당하는 도시 사람들이 당하는 재난보다 더 정도가 심하지요. 은밀한 불행은 공공연한 재난보다 더 잔인한 법이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나는 너누 많은 것을 보고 겪어서 마니교도가 되었답니다.」
— p. 117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흉할 수가 없어요. 전부 조잡하고 저속한 것들뿐이지요. 그렇지만 내일부터 바로 좀 더 고상한 설계에 따라 나무를 심도록 하겠어요.」
두 방문객은 의원 각하에게 하직 인사를 한 다음 궁전에서 나왔다.
「어때요? 이 사람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지요?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들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죠.」
캉디드의 물음에 마르틴이 대답했다.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에 진력나 있는데도 말입니까? 오래전에 플라톤은 음식물을 거부하는 위장은 좋은 위장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비판하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결함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않겠어요?」
「다시 말하면 즐거움을 갖지 않는 즐거움도 있다는 말인가요?」
— p. 165
「나는 두 가지 중에서 뭐가 더 불행한 건지 모르겠어요. 검둥이 해적에게 1백 번이나 겁탈을 당하고 한쪽 엉덩이를 잘리고, 불가리아 군인들에게 태형을 당하고 해부당하고 갤리선에서 노를 젓고,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당한 모든 끔찍한 일들을 다 당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렇게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걸까요?」
— p. 191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한 죄로 엉덩이를 발길로 차이면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또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지 않았더라면, 또 남작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또 엘도라도에서 가지고 온 양들을 모두 잃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캉디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 p.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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