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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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Bande à part)일상/film 2024. 9. 30. 21:50
오랜만에 보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Bande à part. 우리말로 하면 "동떨어진 무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머리도 식힐 겸 갑자기 영화를 한편 보고 싶던 날, 최신 영화보다는 오래된 흑백영화가 당겼다. 그래서 고른 것이 누벨바그.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이 대체로 난해하듯이, 역시 그러하다. 오딜, 프란스, 아르튀르라는 3명의 인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라는 소개는 없지만, 이들은 영어 수업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모종의 협잡을 꾸미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을 냅다 달리는 장면이나,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1분간 정적을 흘려보내는 장면과 같은 영화적 실험들은 과 관련해 잘 알려진 사실들이지만, 꼭 이런 새로운 노력들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연출과 구성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불과 25일 간 촬영이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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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Anatomie d'une chute)일상/film 2024. 3. 16. 11:20
MARGE Quand un élément nous manque pour juger de quelque chose, et que ce manque est insupportable, la seule chose qu’on peut faire c’est décider. Pour sortir du doute, on est parfois obligé de décider de basculer d’un côté plutôt que de l’autre. ... Comme t’as besoin de croire à une chose, et qu’il y en a deux... tu dois choisir. "어떤 걸 판단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면, 그리고 이를 견디기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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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집일상/film 2023. 7. 18. 00:08
1999년도에 개봉한 이 작품은 니콜라스라는 소년이 자신이 속한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집 밖에서 배회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얼기설기 엮여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덧붙여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파리 시내의 풍경이 비교적 잘 담겨 있고, 이야기와 이야기의 매듭이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 있지만 그런 풋풋한 장면들 덕에 오히려 옛날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아버지 역을 직접 맡기도 하는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은 원래는 구 소련 연방에 속했던 조지아 태생으로, 1934년생인 원로 감독이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작품 활동(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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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Mon oncle)일상/film 2023. 3. 12. 12:16
La vie, c'est très drôle, si on prend le temps de regarder. 감독인 자크 타티 본인이 주인공인 윌로 아저씨로 등장하는 영화다. 허술하고 무능하고 생산적 활동과는 거리가 먼 윌로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아저씨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팍팍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셈법에 서툴고 말주변이 없고 어리숙한 윌로. 그런 그는 매제에게는 골칫거리일지 모르지만, 조카 제라르에게는 믿음직한 삼촌이고 이웃 소녀에게는 다정다감한 친구다. 너무 무구(無垢)한 윌로는 요즘 세간의 시선에서 보자면 한심한 사람, 사회에 기여하는 게 없는 사람, 아니면 경계해야 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웨스 앤더슨의 처럼 아기자기한 프랑스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는 손에 꼽을 만큼 특히나 영화 속 무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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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프랑스 영화일상/film 2023. 1. 25. 00:32
올 연말연시는 프랑스 영화와 함께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이다. 영화의 배경은 파리 남동부 이브리 쉬르 센느(Ivry-sur-Seine)에 자리한 철거 직전의 시테 유니벡시테(Cité universitaire)라는 공동주택이다. 영화 도입부에도 자료화면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이 영화는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공동주택은 최초의 우주사인 유리 가가린에 의해 1963년 준공된, 이 지역(Val-de-Marne)에서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던 것이 반 세기를 넘기면서 안전상 문제로 인해 2019년 철거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때문에 영화는 시테 유니벡시테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는 폭발 직전의 건물 안을 무중력으로 유영한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고, 벙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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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폴린일상/film 2022. 10. 20. 16:48
Qui trop parole, il se méfait. Chrétien de Troyes, Perceval 최근 에릭 로메르의 작품들이 재개봉했길래, 무턱대고 이라는 작품을 보고 왔다. 1983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로맨스 영화로, ‘말이 많은 자, 화를 자초한다(Qui trop parole, il se méfait)’는 12세기 프랑스 시인의 문구와 함께 시작한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늘 그러하듯 촌철살인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 발설하는 배우들과, 도입부의 글귀대로 말로 인해 손해를 보는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로맨스가 펼쳐진다.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폴린은 15세 소녀로 영화에서는 대개 조용한 관찰자처럼 나타난다. 사촌언니 마리옹과 함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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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炎)과 술(酒)일상/film 2021. 12. 4. 21:08
은 2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칸 영화제가 개최되지 않았고, 재작년 봉준호 감독의 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게 마지막이다보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법도 하다. 이번 쥘리아 뒤쿠르노의 황금종려상 수상이 또 하나 의미 있는 점은 여성 감독으로서는 28년만에 이루어진 수상이라는 점이다. 의 이번 수상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이 없지 않지만(사실 이변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흔하다), 꼭 이번 수상이 아니더라도 뒤쿠르노의 첫 장편 작품을 이전에 봤던지라 감독의 독창성을 그다지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 뒤쿠르노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그녀의 첫 장편 작품은 '16년도 발표된 다. 때문에 갓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낸 쥘리아 뒤쿠르노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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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색일상/film 2021. 9. 14. 21:36
근래에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연작을 봤다. 다해서 의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연작에서 차용한 색깔들은 프랑스 국기에 쓰이는 삼색(la tricolore)과 같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색깔을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와 연결짓는 것도 생각해볼 법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각 영화가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와 관련이 있었던가 되짚어보면 그리 말끔히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는다.(=_=) 연작은 수상 이력이 대단히 화려한 영화들이기도 하다. 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는 칸 영화제에 초청되고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으니, 영화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