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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삶은 더 편하지일상/film 2016. 10. 3. 17:03
<눈을 감으면 삶은 더 편하지/드라마/다비드 트루에바/안토니오(하비에르 카마라), 벨렌(나탈리아 데 몰리나), 후안호(프란세스크 콜로메르)/108>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Misunderstanding all you see
It's getting hard to be someone but it all works out
It doesn't matter much to me
Let me take you down, cause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Strawberry Fields forever
이렇게 영화 제목을 멋있게 뽑아내기도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사실 존 레논의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곡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스페인 영화제의 첫날에는 <플라워>를 봤는데, 이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을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스페인 영화제의 마지막날이었다. 많은 비가 예보된 날이었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역시나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고..
No one I think is in my tree
I mean it must be high or low
That is you can't you know tune in but it's all right
That is I think it's not too bad
Let me take you down, cause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Strawberry Fields forever
안달루시아의 알메리아(Almería)가 주무대인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 la mancha) 지방의 알바세테(Albacete)에 위치한 어느 학교교실에서 출발한다. 영어교사로 재직중인 안토니오는 존 레논의 광팬으로, 수업시간에 그가 가르치는 내용도 존 레논의 'Help!'. 비틀즈의 해체설이 한창 나돌던 시기, 존 레논이 영화 촬영차 알메리아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알메리아로 향한다.
Always, no sometimes, think it's me
But you know I know when it's a dream
I think I know I mean a "Yes" but it's all wrong
That is I think I disagree
영화의 제목인 <눈을 감으면 삶은 더 편하지>는 기본적으로 가사에서 따온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시대배경인 1966년 프랑코 독재정권 시기를 비꼬는 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복도에 앉아 있는 학생을 가차없이 때리는 신부, 보호시설에 기거하는 여학생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수녀,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아버지, 마초기질을 과시하며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는 알메이라의 사내들. 비정상적인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이 시대에 이러한 폭행은 아무렇지 않게 묵과된다. 스페인의 따듯한 풍경과 주인공인 안토니오의 낙천적인 기질에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등장하는 이러한 장면은 프랑코 독재가 일상에 가져다준 비일상성을 암시한다.
어찌 됐든 존 레논에 푹 빠진 안토니오만큼은 마치 프랑코의 독재와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이후 알메이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난 두 젊은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안토니오라는 인물의 연기를 맡은 배우가 낯익다 생각했다. 그래서 필모그래피를 확인해보니 <그녀에게>에서 남자간호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아닌가'ㅁ' <스페인영화의 세계>라는 교양수업을 듣던 시절,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을 챙겨보던 때에 봤던 영화인데, <그녀에게>가 나온지 꽤 된 영화인데도 배우(하비에르 카마라)는 옷차림과 캐릭터만 바뀌었을 뿐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튼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존 레논을 직접 만나겠다는 희망을 안고 알메이라로 향하던 안토니오는 우연히 두 명의 젊은이와 마주친다. 그 첫 번째는 벨렌, 그 두 번째는 후안호다. 미혼모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출산 후 곧바로 입양을 도와주는 보호시설에 보내진 벨렌, 아버지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지 못하고 가출한 후안호. 견디기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탈출을 감행한 이 두 젊은이에게 길 위에서 만난 안토니오는 일종의 멘토가 된다. 그는 젊은이들의 상처를 들춰내거나 과오(過誤)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가 건네는 것은 늘 유쾌하고 따듯한 말들이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마냥 듣기 좋은 말들은 아니다. 그는 벨렌과의 대화에서 그녀에게 슬픔과 행복 둘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어찌 보면 프랑코의 독재라는 암흑기에서 이 세 인물의 조우(遭遇)는 필연적인 것 같다.
안토니오가 이들에게 일깨우는 또 한 가지 가르침은 기성세대의 부정의(不正義)를 그저 지켜보지 말라는 것이다. 정 안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주위에 도움(역시 존 레논의 곡이기도 하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인 "Help!!!!!")을 요청하라고 말한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슬며시 눈감아주는 어른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안토니오처럼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안토니오는 존 레논과의 독대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제 알메이라에서 각자의 행선지를 정해야 하는 순간. 안토니오는 직장이었던 학교로 돌아가고, 후안호는 알메이라까지 찾아온 아버지를 따라 마드리드에 되돌아가 가게 된다. 이들의 삶은 어느 정도 원상복귀되겠지만, 안토니오와의 만남 이후로 이 젊은이들은 분명 또 다른 이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미칠 것이다. ...그런데 벨렌은? 막연히 말라가(Málaga)로 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마땅히 거처가 없는 그녀. 그녀는 말라가로 향하는 대신 결국 후안호와 함께 마드리드 행을 택한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마드리드에서 그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향배가 가장 미지수이고 기대가 된다.
남미 영화를 포함해서 스페인어로 된 영화를 국내에서 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스페인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는 것은 더더욱 기회가 드물어서, 오랜만에 보는 스페인 영화가 반가웠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처럼 유명한 감독의 작품은 정식개봉을 하기는 해도 상영관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리 오랫동안 스크린에 오래 걸려 있지 않는다. 여튼 하비에르 카마라라는 배우에 대해 언급했지만, 시종일관 경쾌하고 믿음직한 그의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다른 두 청년 배우의 연기도 돋보였던 기분 좋아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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