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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ated & Exhausted일상/film 2016. 10. 28. 02:06
<라우더 댄 밤즈/드라마/요아킴 트리에/진 리드(가브리엘 번), 조나 리드(제시 아이젠버그), 이자벨 리드(이자벨 위페르)>
"Life is louder than bombs."
영화를 본 뒤, 영화의 제목 "Louder than bombs" 앞에 주어를 넣어서 하나의 문장을 완성시켜보았다.
무엇이 폭탄보다 더 요란하다는 것일까? 폭발보다도 폭발력 있고, 파괴력 있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영화를 주욱 좇아가다보면, 그것은 아마도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마 시네마톡이든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면 영화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충분히 깊은 인상을 받아갈 수 있었다.
영화는 종군 사진기자인 한 여성과 그녀의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쎄...형용하기 어려운 여운이 남았는데, 어디서 포인트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제3자의 관점에서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전쟁의 참상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전장(戰場)을 찾아다니는 이자벨 리드.
전장에서 그녀는 비극을 관찰하고 촬영하는 것이 직업이다.
삶의 보금자리로 되돌아 온 후에도 그녀는 좀처럼 전장에서의 잔상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을 택한다.(아마 이 정도는 영화의 시놉시스로 소개되어 있으니 그리 스포일은 안 될 것 같다..)
영화의 제목에 걸맞지 않게, 영화는 지극히 정적(靜的)이다.
다만 그녀의 죽음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폭탄이 되어 가족의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뿐이다.
먼저 남편인 진 리드. 사회적 사명감과 커리어에 대한 야망을 갖고 전장에 뛰어든 그녀와 달리 그는 가족을 택한 인물이다.
무서울 정도로 지독한 그녀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러한 열정이 그녀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갖고 살아왔던 그.
예감은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역시나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형제 가운데 장남인 조나 리드.
아버지를 대신해 차분히 그녀의 마지막 사진작업을 정리하는 듯 했던 그도, 이내 죽음의 의미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향성, 덧없음, 냉소가 어느덧 그의 가슴을 꽉 채운다.
끝으로 가장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둘째 아들 콘래드 리드.
아버지와 일체의 대화를 단절한 채, 주위와 고립된 채 살아가는 그.
어머니의 부재 이후로 그는 막 나가기로 작심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후 글을 써내려가는 행위를 통해 나름 묵묵히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에 참여해 왔음이 드러난다.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 남성은 각자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한다.
그녀가 일으킨 파문은 세 남성의 가슴 속에 불가해한 폭탄을 심어 놓는다.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방황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대체 무엇을?
사진 속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이자벨 리드.
그녀의 흐리멍덩한 눈동자.
말없이 한참 정면을 바라보는 이자벨 리드. 포커스인된 화면.(영화에서 배우가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기법은 매우 예외적이다, 좀 섬뜩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흐리멍덩한 눈동자.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그녀.
그녀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합리화하도록 만들었을까?
폭탄이 문제다.
시리아의 폭탄. 아프가니스탄의 폭탄.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폭음. 뒤이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녀는 세 남자의 가슴에 폭탄을 심었다.
그리고 전쟁은 그녀의 가슴에 폭탄을 심었다.
그녀는 종군 사진기자로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추진력으로 자신의 길을 외로이 걸어갔지만, 그 끝은 폭탄처럼 파국적이었다.
그녀는 사진기자로서의 명예를 얻었지만 삶을 잃었다.
가족과의 끈은 희미해졌다.
인간의 고독. 동기. 욕구. 의미. 회의.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광적(狂的)으로 표현했다면 이 스토리는 덜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잔잔한 등장인물들의 심경변화 속에서 그들의 심장에 꿈틀대는 폭탄과도 같은 그 무언가를 더 집요하게 탐색하게 되었다.
비극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다.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그 살상력과는 별개로 핵폭탄이 버섯구름을 만들어내는 초자연적인 광경에서 시각적인 미(美)를 발견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런 비이성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러한 폭탄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고 가정할 수는 있는 것 아닐까.
본인을 추동시키는 의미에서 모멘텀을 불어넣어 주는 폭탄.
또는,
상처가 점점 자라나 어느덧 깨달았을 때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그런 폭탄.
폭탄은 터뜨려야 해소되는 것일까?
아니면 올바른 회선을 절단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매듭을 풀어나가는 세 남자의 이야기.
심오한 울림이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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