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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단편(短篇)과 단상(斷想)일상/film 2016. 10. 30. 00:07
<포 러브 위 캔(홍콩)/치 렁 람/48>
<소울메이트(미얀마)/레이 레이 아이/12>
<오아시스(오스트레일리아)/조슈아 롱허스트/9>
<짝사랑 스파이럴(일본)/케이노스케 하라/29>
*사진출처 : 영화제 공식홈페이지
프라이드 영화제라는 것을 안 것이 아마 3년 전쯤, 한창 영화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파고들 수록 각양각색의 영화제가 거의 연중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입이 떡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런 문화적 기회들을 그동안 모른채 살아왔단 말인가? 하면서. 이 영화제의 경우 당시에는 LGBT 영화제라는 이름을 걸고 10월말에서 11월초에 개최됐었는데, 작년부터인가 영화제명이 바뀌었다. 또한 작년까지는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던 것이 올해는 명동 시네라이브러리(CGV)로 행사공간이 옮겨지면서 관람객 수가 확연히 늘어난 것 같다. 일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보니 이번 영화제는 그냥 제낄까 생각했지만, 영화제 폐막도 얼마 남지 않았고 어쩐지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의무적으로(?) 단편영화 선(選)을 봤다. 그마저도 뒤늦게 급하게 예매를 해서 영화 상영 중에 입장하는 민폐를 끼쳤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영화를 챙겨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영화를 보는 자체가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고 동시에 어떤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남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만한 영화까지 찾아 다니는 것 같다.
영화든 소설이든 간접적인 여행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하는 여행이든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여행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전부터 가고 싶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가지 못한 것도 달랠 겸, 무리를 해서라도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합리화했다.(역시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기왕에 영화제에서 추천하는 작품들을 보고 싶엇지만, 그렇게까지 시간적인 사치를 부릴 순 없었고 그냥 시간대에 맞는 영화를 무작위로 골라서 관람했다.
사실 LGBT에 관한 영화는 기존에도 웰메이드 영화가 많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부터 <가장 따듯한 색 : 블루>,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대니쉬 걸>에 이르기까지..내가 본 영화의 차이점이라면 단지 러닝타임이 짧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감동적인 영화도 있었고 이건 좀 별로다~ 싶은 영화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나마 러닝타임이 길지도 않은 영화들의 면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이런 소수자를 위한 영화제의 의의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학창시절에 '도덕'이나 '사회' 수업을 들으면서, 장애인, 노약자, 다문화가정, 실업자, 탈북민 등등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논의(비록 형식적이기는 했지만)를 한 적은 있어도 성 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성 소수자에 대한 공론(公論)은 아직까지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를 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학교 1학년에 재학하는 동안 나를 포함해 뜻이 맞는 친구들 7명과 독서토론모임이라는 소그룹을 결성한 적이 있다. 당시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신영복의 <강의>, 노엄 촘스키의 철학서적 등을 읽으면서 두런두런 생각들을 공유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독서를 한 뒤에는 해당 주제로 꼭 토론을 했었는데,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는 우리가 다뤘던 꼭지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풋내기들끼리 서로 설익은 생각들을 기탄없이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텍스트조차 정해놓지 않고서 곧바로 토론에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토론을 하던 중 한 친구가 했던 한 마디 말이 마치 체에 이물질을 걸러내듯 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연애감정은 존중해. 하지만 나랑 엮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뭔가 찜찜하고 이상했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듯한 애매모호한 표현. 표현이 좀 다를 뿐 이런 식의 반응이 뒤를 이었다. 되돌아보건대 이는 관용을 가장한 배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서운(?) 사실은 나 역시 집단심리에 휩쓸려 비슷한 의견을 표현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비단 이 사례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다른 성적 기호(嗜好)가 생물학적으로 정상인지, 인구의 재생산 측면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그들이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어떻게 신장시켜 왔는지는 사실 이들의 인권을 논하는 데 있어서 결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요컨대 성 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공적인 담론이 부재(不在)하다는 점이다. 동성간 결혼이 허용될 수 있는지, 기존의 가족개념이 지극히 이성애적인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당장 누군가가 뜬금없이 동성간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찬성 의견을 피력한다면 대화 상대방은 아리송해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미 한 나라의 수장이 나서서 동성간 결혼 합법화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고, 주정부에 따라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 성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외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를 올해 초 봤다. 한 사건이 촉발한 남성혐오와 여성혐오간의 밑도 끝도 없는 날선 대립을 바라보며 느낀 것이 있다. 공론장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공론장이 너무나도 비좁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면 절대 이성적인 대화가 오갈 수 없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채 먼저 서로의 철옹성을 확인하고, 그 다음 차례로는 상대방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댈 뿐이다.
마찬가지로,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도 제대로된 공론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당장 공론화가 요구되는 이슈는 여러 가지 많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도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적 담론에서 반드시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거나 성 소수자의 인권을 무조건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 함께 논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場)이 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연례행사로 서울광장 일대에서 LGBT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 같던데, 참여한 적이 없으니 활발하게 교류의 장이 마련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광화문에서 성 소수자 반대 시위가 열리는 것은 종종 본 적이 있다. 어느 일방의 목소리만 허공에 울려퍼지고 있는 셈이다. 상대방에게 전달되건 말건 내 얘기만 하고 보자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희한하게도 언론에서조차 국내 성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시사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좀 의외다)
여하간 분명 어려운 문제다. 다원화된 사회라고는 하지만 비혼(非婚)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거나, 서구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는 가치의 흐름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걸 소화하기가 가끔 힘들다. 다만 오늘날의 변화된 세태에서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성적 결합의 방식이 다양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소수자라 함은 성적 소수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또 다른 형태의 소수자가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꾸 소수자, 소수자 하다보니, 오로지 머릿수만으로 한 쪽은 다수, 다른 한 쪽은 소수로 나누는 것 역시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거북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어찌 됐든 민주사회에서 보다 다양한 가치가 포섭될 수 있도록,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탁 트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누가 나서서 어떤 방식을 활용해야 효과적일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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