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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바다여행/2021 무더위 한려수도 2021. 10. 19. 21:30
조금 늦었지만 이제 남해~통영 여행기를 매듭지으려고 한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꽤 경치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그리 수월한 여행이 아니었던 것 역시 떠오른다. 그런 고로 통영에서의 일정은 남해에 비해 그리 많지가 않다. 원래는 여행의 마지막날 소매물도까지 나가보는 걸 생각했지만, 2일차에 미륵산을 오르는 것으로 여행을 일단락했다. 만약 소매물도를 간다면 거제도의 저구항을 통해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배편 운항에도 일부 조정이 생겼기 때문에 소매물도를 들어가는 건 더욱 생각하기 어려웠다.
남해의 금산과 같은 곳이 통영에서는 미륵산이 될 것 같다. 700미터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금산에 비해 500미터에 달하지 못하는 미륵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통영항 방면, 그러니까 정북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고, 케이블카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오르내리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다. 남서쪽 방면을 제외하면 통영 대부분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중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던 '리아스식 해안'이 고스란이 보인다. 엄마와 나는 아침으로는 수제 샌드위치를 먹고, 점심으로는 충무김밥을 챙겨들어 미륵산으로 이동했다.
해가 한낮을 넘기는 시각이다보니 해의 맞은편에 서 있는 동쪽 바다의 수평선이 희뿌옇게 산란(散亂)되었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한려수도의 풍경이 조금씩 변한다. 한쪽에는 좁다란 협곡 지대를 따라서 작은 마을들이 매복해 있다. 90도 정도 시선을 돌리면 번화한 통영항이 곧장 나타나는데, 뭉뚝한 반도와 그 반도에서 갈라져 나온 조그만 섬을 아우르고 있는 통영이라는 도시의 지리적인 특성이 외지인의 입장에서 조금 신기하게 다가온다. '충무'라는 지명을 어렴풋이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데—충무김밥에서 '충무'도 그러한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고, 두말할 것도 없이 '충무'라는 말은 충무공 이순신에서 왔다—95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반도와 섬이 공생하는 도시가 탄생했다.
여하간 또 다른 한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면 이번에는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서 펼쳐진 필드 골프장과, 시선이 닿는 조금 먼 곳으로 서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크레인 군단이 보인다. 미로 같은 수로를 마주 달리는 배들을 보면 도시의 활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피하고 싶었던 도시의 복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섬들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안에 통영이라는 도시의 풍경이 그럭저럭 형태를 유지하면서, 뭍과 바다가 서로에게 미치는 인력과 척력을 조율하는 듯하다.
미륵산을 내려온 뒤에는 미륵산을 중심으로 공전하듯이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둥글게 한 바퀴 드라이브한다. 삼덕리, 연화리, 달아공원. 낙조 시간이 되기 전 달아공원에 도착한다. 수평선을 어지럽히는 굵은 운무(雲霧)가 태양이 따르려던 경로를 소리 없이 할퀴어낸다. 구름은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서 어떤 것은 찢겨진 갱지(更紙)가 되고, 오렌지빛 띠가 되며, 아기새의 날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새하얀 솜털이 되기도 한다. 미남리, 신전리, 영운리, 이윽고 통영항. 이제 하지(夏至)는 지났고 산자락에는 빠르게 밤이 엄습해온다. 다시 어둠이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