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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의 일기: 몽수히 공원Vᵉ arrondissement de Paris/Janvier 2022. 1. 19. 02:08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로 가장 이른 일정인 것 같다. 파리에 지난 수요일에 도착했으니 화요일인 오늘은 파리에 온 지 꼭 일주일이 된다. 아직 어두운 거리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14구로 향했다.
아침에는 간단한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주제는 노동시장에 관한 것으로,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노동력의 특성, 고용계약 시스템, 인센티브의 효과 등을 짧은 시간에 다뤘다. TB 교수는 프랑스어 억양이 매우 강해서 그의 영어에 익숙해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고용자와 피고용인 일방에 의한 자유로운 계약 해지가 가능한 영미식 고용관계와 일정한 조건을 충족했을 때 고용자가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대륙유럽식 고용관계는 각각 장단점을 지닌다. 고용계약 종료가 쉬운 영미권의 경우 코로나 상황에서 빠른 고용감축으로 고용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지만, 반대급부로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고용시장이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한편 대륙유럽 국가(프랑스)들은 기존 일자리를 보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팬데믹 상황에서 실업 증가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그만큼 경기 회복 국면에서 극적인 고용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잠시 몽파흐나스 역으로 갔다. 아직도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산더미이기 때문인데, 인터넷이 안 되니 와이파이가 될 만한 별다방으로 간 것이다. (문제는 여기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서 몽파흐나스역의 공공 와이파이를 써야만 했다.) 몇 가지 행정 일을 보고 오후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두 번째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수업은 환경 정책에 관한 것으로 크게 적응(Adaptation) 전략과 경감(Mitigation) 전략을 비교하며 수업을 풀어나갔다. 풀어서 말하면 적응 전략은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 국가 또는 지역 사회가 적응해가는 정책을 말한다. 이는 사후적이지만 단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경감 전략은 환경문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세계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장기적 효과를 겨냥한 사전적 접근으로, 환경문제를 경감하기 위해 비용이 지출된다는 점에서 당장에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결국 적응 전략과 경감 전략 모두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하다면 장기적으로는 경감 전략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청사진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수업이 끝난뒤는 MG 교수와의 면담이 있었다. 흰 수염에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다. 이번 학기 이곳에서 수학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가 있어 조금 공격적으로 메일을 보냈더니 사무실로 올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빨간 소파가 있는 그의 사무실에 앉아 학사 일정에 대해 몇 가지 확답을 주고 받은 뒤, 들을 만한 수업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 나갔다. 이곳의 시스템은 한국과 정반대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어서 이곳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뇌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 이곳 행정이 한국과 정반대였다면 거꾸로 생각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문제는 나는 그러한 불확실성이 극도로 불편하다는 점이다.
교수의 사무실을 나선 다음에는 어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니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숙사가 있는 5구까지 걸어서 왔다. 오는 길에는 인근의 몽수히 공원을 거쳤다. 뤽상부르 공원처럼 위용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공원의 북쪽으로는 해자(垓子)처럼 생긴 호수가 있고, 널따란 언덕과 호수 사이 노면 아래로는 시테 유니벡시테흐(cité universitaire) 역사가 보인다. 중간에 빵집에도 들르고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기숙사에 거의 다다르고 보니 50분 가량을 걸었다. 길이 벌써 어두워지는데 파리의 낮은 언제부터 좀 넉넉해지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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