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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의 일기: 영화관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5. 03:05
# 이른 아침 수업을 들으러 14구로 향했다. 지난 번에는 이론 수업이 진행되었고, 이번 주에는 실습이 진행되었는데 이 수업은 수강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한 주 동안 이뤄지는 모든 수업을 다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점심에는 잠시 나키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석사과정이 아닌 박사과정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지금 듣는 수업들은 학점인정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논문 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듣고 있다고 했다. 그밖에 한 시간 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5구로 되돌아왔다.# 오후에는 프랑스어 문법 수업이 있다. 그동안 바르톨로메가 잠시 수업을 맡고 있었다가 오늘부터는 마리옹이 복귀해서 수업을 진행한다. 어느 쪽이든 성의껏 가르쳐주어서 좋지만, 학생들의 질문이 가끔 너무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빠져서 수업 진행이 더딜 때가 있다. 가령 전치사 pendant을 다룰 때, 지속성과는 관련 없지만 함께 어울려 쓸 수 있는 사례가 없는지 끝도 없이 이것저것 질문하는 식이다. 두 시간 짜리 수업이 끝난 뒤에는 기숙사로 돌아와 1시간 좀 넘게 잠이 들었다. 완성된 시간표에 가깝게 수업을 들은 게 이번 주가 처음인데 목금인 어제와 오늘이 되고나니 체력이 바닥난 것 같다.
# 저녁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잠에서 깬 뒤로도 한참 누워 있다가, 밥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 영화관에 갔다. L’épée de bois라는 영화관이다. 시장을 지나가다 영화관에 사람이 출입하는 건 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볼 생각을 못했다. 얼마전 자막 없이 프랑스어 영화를 보거나 프랑스어 자막이 들어간 영어로 된 영화를 보는 게 프랑스어 실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거란 기대 없이 영화를 한 편 보자 생각했다.
내가 본 영화는 자비에 지아놀리 감독의 <잃어버린 환상(illusions perdues)>이라는 작품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에 기반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야망을 품고 파리로 올라온 뤼시앙이라는 젊은 시인이 자신의 글을 알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종국에는 자신의 야망에 산산이 파괴된다는 내용이다. 19세기에 지어진 발자크의 작품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당시 파리의 풍경이 매우 잘 묘사되어 있고, 자비에 돌란이 나탕 역을 연기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이 작품은 출세와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을 하는 당대의 성공 공식이 잘 드러나 있는데, 돈을 벌기 위해 다작에 몰두했던 발자크 자신의 자전적 성격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오늘 간 영화관은 상영관이 두 개인 작은 영화관으로, 야심한 시각이었음에도 장년층과 노년층 관객이 상당히 많아서 의외였다. 시설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열악하지만 사람들은 그리 개의치 않는 듯하다. 자리도 매표할 때 지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상영 전 나오는 광고 중 아마도 지역 기반으로 경영하는 듯한 해충 박멸 업체의 광고를 보면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재밌다는 듯 킥킥 웃는다.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를 보던 옛날 사람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요기할 거리도 살 겸 팡테옹 일대를 빙 둘러 기숙사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이어서 그런지 주택가 이곳저곳에서 자정이 다 되도록 파티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비스트로에도 아직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주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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