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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의 일기: 꽃과 요리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6. 23:10
#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하늘이 온통 울상이다. 새로울 것도 없긴 하지만 오늘은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할 만큼 비가 오기까지 한다. 오전에는 카페에서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었다. 혁명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에서 이 책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한 시간 좀 넘게 책을 읽었을까 막 재밌어지려던 참이어서 조금 더 읽다 가고 싶었지만, 점심이 가까워지니 카페가 만원(滿員)이 되어서 그만 밖으로 나왔다. 카페에 올 때보다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어 우산을 쓰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 아직도 카페와 비스트로를 구분하는 게 어렵다. 아마도 ‘카페’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와 다른 데에서 오는 혼동 때문인 것 같다.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 일반적인 카페들은 대개 작은 식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식사 때가 아닌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는 가볍게 음료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점심이나 저녁이 되면 식사를 하러 카페를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생제르망의 카페 레 되 마고가 그러한 경우다. (이곳은 식사 때가 아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Le petit-déjuner나 Plat du jour처럼 그날그날, 계절에 따라 정식(定食)이라 할 만한 요리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만큼 격식있는 요리는 아니지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내놓는 비스트로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게다가 번화가의 상당수 카페들은 늦은 새벽까지 영업을 하며 ‘펍’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콩트흐스꺄흐프 광장(Place de la Contrescarpe)은 무프타흐 시장에서도 가장 젊은이들이 몰리는 곳으로, 이곳에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가게들은 늦은 새벽까지 영업을 하면서 안주가 될 만한 요리와 맥주, 칵테일 등을 제공한다. 인근에 ‘펍’ 또는 ‘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가게들도 드문드문 있지만,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곳들과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식사하는 시간을 피해서 카페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한국 카페와 같은 곳—특히 나한테는 맘편히 책을 읽는 것도 중요했지만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게 크다—을 찾는다면 나는 오히려 specialty coffee로 카페를 검색하곤 한다. 저번에 마레 지구에 갔다가 Terre de café라는 곳이 평소 내가 찾던 카페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도 파리 시내에 지점이 몇 군데 있다) 여기서는 케냐,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등의 스페셜티 커피도 취급하고, 얼음이 들어간 커피도 판다. 커피 이외의 음료는 팔지 않는다. 반면 일반적인 카페들은 espresso, café allongé, café crème, cappuccino처럼 기본적인 원두에 따뜻한 음료들만 팔고 밤에는 주로 주류를 취급한다.
그렇게 카페들을 찾다보면 ‘아이스-(-glacé)’가 들어간 커피를 파는 매장들을 학교 주변에서도 꽤 찾을 수가 있었다. 그냥 ‘café’로 검색해서는 너무 많은 매장이 나오고 대부분은 비스트로와 구별이 되지 않는 곳들이다. 내가 말하는 한국식 카페라는 곳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커피를 즐기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틈새시장(niche)을 잘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곳은 빙수, 어떤 곳은 아시아식 디저트 등을 활용해 사람들이 다시 찾을 만한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 오후에는 고령화 및 연금 정책에 관한 경제학 공부를 했다. 카페를 나온 다음 먼저 몽주 광장으로 갔다. 닭고기와 야채를 좀 사기 위해서다. 일요일마다 장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아침에만 장이 서는지 늦은 오후에는 장사를 접어서 광장이 휑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해서 그냥 슈퍼마켓에서 장을 해결했다. 아쉬운 점은 닭가슴살도 함께 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리밖에 없었다는 점. 슈퍼마켓을 나선 다음에는 몽소 꽃집에서 이름 모를 꽃을 한 다발 샀다. 와인병에 물을 담아 꽃을 꽂아놓을 생각이다.사먹는 것도 질리고 직접 요리를 하는 편이 돈도 절약되기 때문에 일요일을 맞아 닭볶음탕을 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가슴살이 없고 칼칼한 맛을 낼 고추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대신에 공용식당에 있는 재료 가운데 바질과 통후추를 활용해 조금 다른 맛을 내보기로 했다. 고추장도 듬뿍 넣었다. 음식이 완성된 다음에는 다음 끼니에 먹을 분량도 따로 담고 같은 층에 지내는 학생들도 맛볼 수 있게 조금 남겨두었다. 쌀밥에 모처럼 한국의 맛이 가득한 반찬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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