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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의 일기: 한 바퀴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4. 00:45
# 아침에는 도서관에서 오늘 수업에 필요한 프로그래밍 프로그램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책을 읽었다. 또 며칠째 까먹고 받아오지 않은 세탁물을 가지러 뤽상부르 공원까지 나갔다. 까칠한 아주머니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셔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다림질된 옷을 건네며 아주 예쁘게 됐다고 내게 확인시켜 주시길래 인사치레나마 나 또한 상냥히 인사한 다음 가게를 나왔다. 아주머니가 지난 학기 프랑스어 수업을 맡았던 프랑스 교수와 꼭 닮으셨다.점심을 먹은 뒤에는 한 시간쯤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프랑스어 회화 수업을 들었다. A1 수준에 해당하는 수업이지만 가용할 수 있는 시간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회화 수업이다. 말하는 게 한참 부족해서 아예 마음을 비우고 A1부터 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개선을 하고 싶은 부분이 회화와 청해인데 모두 A 수준에 해당하는 수업밖에는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수업을 운영할 때는 보통 다 까닭이 있어서 난이도 있는 공부를 하려면 작문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다.
# 오후에는 문화 진화(cultural evolution)라 해서 융합학문적 성격을 띠는 수업을 들었다. 첫 수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들었던 교수 중에 영어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해서 신청했던 대로 듣게 될 것 같다. 교수의 표현력이나 어휘가 너무 다양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해박하다는 것이 보여서 천재끼가 느껴진다. (어제 들었던 스코틀랜드 출신 교수는 화법이 격정적이고 빨라서 전달력이 좋지는 않았다. 열정만큼은 수업 내내 감탄하면서 들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냥 문화인류학 수업이다. 경제 문제 중 ‘기술 변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 수업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었는데, 협동이나 디지털 문화에 관한 대목들에서 아~~주 미묘하게 접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총균쇠』나 『호모 사피엔스』 같은 책을 재밌게 읽기야 했지만, 이걸 수업으로 듣자니 부담스러운 건 사실. 나는 문화인류학에 대한 베이스가 전혀 없다. 교수는 경제학 백그라운드로 들어도 무방하다고 사전에 메일로 답변해주었지만, 오늘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들어보니 (당연하겠지만) 배경지식이 있는 게 나은 것 같다. 하지만 또 좋은 면을 보자면 질적 연구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양적 연구 실습이 병행되기 때문에 방법론 연습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저녁에는 시험 삼아 B2-C2 수준에 해당하는 작문 수업에 들어갔다. 점심에 들은 회화 수업에 들어왔던 부아송이 수업을 맡는다. 점심 수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른 말투로,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어휘로 수업을 진행한다. la face와 le faciès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되었음을 다룬 다음, 각각의 쓰임이 어떻게 다른지 용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할 만큼 심화된 수업이다. 여기 앉아 있는 학생들은 대체로 문학이나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어학 수업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소양을 요한다.
아무래도 나처럼 사회과학, 그 안에서도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도전하는 건 과욕인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서 불문학부 졸업반 수업을 청강할 때 힘들다고는 못 느꼈는데, 여기서는 모든 게 만만치가 않다. 오늘따라 오전부터 딱딱한 의자에 앉을 때마다 등이 욱신거리고 오후 수업을 3분의 2쯤 들을 때부터 힘이 들었는데 저녁이 되니 체력이 바닥나는 것 같았다. 애당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수업은 영어로 공부하고 일상에서 프랑스어를 병행한다는 목표—는 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지나친 욕심이었던 걸까. 어쨌든 오늘로써 그간 점찍어 두었던 수업들을 모두 한 번씩 들었다. 일정과 학업량을 저울질한 다음에 한 주의 시간표를 완성시켜야겠다(!!)'Vᵉ arrondissement de Paris > Févri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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