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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의 일기: 59 히볼리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3. 03:30
# 오늘은 게임이론 수업이 처음으로 시작하는 날이다. 수업이 어느 학과에서 개설되는지에 따라서 개강일정과 방학 일정까지도 달라진다. 이 수업은 파리 대학에서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별로 갈 일이 없는 6구로 나가야 한다. 강의장소가 파리대학의 Salle Curie B로만 표기가 되어 있어서 위치를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파리대학도 캠퍼스가 여러 곳에 분산이 되어 있는 데다가, 강의실명만 들어서는 건물의 몇 층 어디쯤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강의실은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BH 교수는 이번에 부임한 신임 교수로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대단히 열정적이다. 본인이 흥분을 하면 말이 빨라지므로 너무 말이 빠르면 얘기를 하란다. 한 친구가 말을 조금만 천천히 해달라고 했지만, 어느새 다시 열정적인 톤으로 되돌아가 있다. 다른 수업들 못지 않게 흥미로운 수업이고, 철학과 심리학에 대한 언급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시경제학 수업이다. 실시간으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토론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습효과도 확실히 좋다. 월화수에 이루어지는 수업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다만 목금에 이뤄지는 수업이 아직 미지수다. 목요일 수업 또한 내일이 개강으로 수업을 들어봐야 가닥이 잡힐 것 같다.
#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매 수업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교수들이 답변할 때 기후 변화를 사례로 드는 경우가 많아서 이곳에서 관심을 가지는 주된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의사결정의 이론틀을 다룰 때 적절성(Relevance)에 유념하라는 BH 교수의 말에, 행위자가 늘어나는 게임 상황에서 이론틀의 적절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론적 논의가 있는지 물었는데, 사례로 곧장 드는 것이 기후변화 이슈다.
하지만 일전에 라 데팡스에서 느꼈듯이, 이들이 말하는 환경 문제라는 것이 편의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써 기후문제, 탄소배출 감축과 같은 문제를 거론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기후나 환경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소비 패턴을 촉진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생태 문제에 관심을 쏟는 철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의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 딱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에너지가 빠져나간 느낌이다. 무의식 중에 새로운 언어에 적응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수업을 따라가는 데 알게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있는 데다, 월화에 수업이 몰려 있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과 동일한 수업시수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의 학업량이 더 많다. 수업이 끝난 뒤 기운도 차릴 겸 생제르망 거리의 카페 레 되 마고를 다시 한 번 찾아 한숨 돌렸다.
# 카페를 나와 퐁뇌프 다리를 건너 5분쯤 걸으면 59 히볼리가 나온다. 59 히볼리 또는 리볼리(59 Rivoli)라는 곳으로 이전에 샤틀레 역을 이용하러 길을 걷다가 독특한 외관을 본 적이 있어서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다. 위키 프랑스에 따르면 1999년도 3인의 예술가들이 당시 8년 동안 채무 문제로 인해 공실로 있던 이곳 건물에 침입(pénétrer), 무단점유한 것이 지금 현 59 히볼리의 시초가 된다. 이후로 이곳은 퇴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러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스튜디오로 사용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시의 승인허가를 받아 2017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방문했을 만큼 상징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고 소개된다.
말만 들어서는 낭만적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지역의 5~6층 짜리 건물을 무단점유해서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59 히볼리가 도심의 예술공간으로 성공을 거두어서 큰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존 제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자본이 있어도 입주하기 힘든 공간을 무단점유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아가서는 어떤 형태이든지간에—그것이 시민들 사이에서든, 예술가와 시민 사이에서든, 또는 행정기관과의 협상이든, 그 매개체가 예술이든 정치적 구호이든—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발전한 사례다. 일단은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들의 서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 공간 안에 어떤 아틀리에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보자. 멀끔하고 근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공간은 아니지만, 이들의 실험정신이 강렬히 느껴져서 색다른 공간인 것은 분명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 10여 개 이상의 작업실을 둘러보는 동안, 확 마음에 드는 작품도 발견했다. (포스터를 하나 구하고 싶어서 물어보려다 충동구매가 될 것 같아 참았다.) 그리고 기묘하게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전형적으로 제도권 안에 있을 때 인정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인데, 뭐든지 뒤집어 엎어버리고도 개의치 않는 이곳의 창작 과정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활력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히 매력적이라고 형용하기는 어렵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사고방식을 거쳐 수용하는 것부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내 눈 앞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고, 잠시 쉬느라 여유가 있는 작가는 나를 알던 사람처럼 먼제 내게 인삿말(Bonjour !)을 건네기도 한다. 작가의 개성이 매우 강하며 겹치는 소재가 없다. 심지어 무료로 개방되는 데다 파리 시내의 다른 미술관과 달리 공간이 거대한 것도 아니어서 지나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기에 딱이다. 감상을 강요하지도 않고, 너저분한 소파에서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예상과 달리 이곳에는 젊은 작가들과 나이 많은 작가의 비중이 비슷하다. 예술가들의 국적도 브라질에서 일본까지 다양하다. 일본 작가는 친구가 찾아왔는지 들뜬 억양으로 조곤조곤 일본어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활동을 ‘저항정신’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거나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그냥 서로 다른 예술가들이 부르는 불협화음이면서도 방문객들과 공명(共鳴)하는 유쾌한 리듬인 것이다.
작품들을 ‘구경’하는데 1층에서는 피아노 연주가 들려온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떤 목적이 분명하고 의욕이 가득하더라도 몇몇이 모여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평소 파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작품을 들여다보다가도 다른 한편으로 매사에 막무가내인 이들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진저리도 났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작품내용도 수시로 달라진다고 하니 생제르맹까지 나올 일이 있으면 종종 들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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