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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의 일기: 가방과 물통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11. 22:27
# 오늘 아침 역시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제 들었던 문화인류학 수업에 필요한 문헌을 두 편 읽었다. 문화인류학 수업답게 학명(學名)도 여럿 등장하고 어휘부터 다르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논문들보다 읽기 까다롭다. 금요일 카페테리아는 비교적 한산했다. 카페테리아의 좋은 점은 커피—자판기 커피는 0.5유로인데 맛이 괜찮다—를 마시면서 오래 머물러도 되고, 공부하는 동안 주변에서 대화하는 소리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이곳 언어에도 노출된다는 점이다.
J.J. Rousseau (1712-1778) Devant le Panthéon # 어제 밤에 비가 오더니 오늘 역시 아주 맑은 날씨다. 날씨도 푹해서 점심을 먹은 뒤 간단히 산책(flânerie)을 했다. 조금 더 멀리 나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늦은 오후에 프랑스어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라탕 지역에서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로 쏘다녀 보기로 했다. 팡테옹과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엉글레 가(R des Anglais)로 접어들었다. 영문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가기에 적당한 길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햇볕을 쬐고 있는 르네 비비아니 광장(Square René Viviani)을 지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도착했다.
R des Anglais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Square René Viviani 지난번 서점에 왔을 때 펭귄에서 나온 플라톤의 『국가론(On Republic)』을 눈여겨 봐두었었는데, 어쩐 일인지 철학 코너에 플라톤의 다른 책은 다 있는데 『국가론』만 보이지 않았다. 매대에 진열된 책도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직원에게 책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다 오늘따라 서점에 사람이 많아서 할 수 없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만 연신 들추어 보았다. 『율리시스』는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국내에는 아직까지 번역서가 마땅치 않다. 언어유희나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번역이 어려운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심지어 만화(Bande dessinée)로 된 『율리시스(Ulysses)』까지 있다니..! 한편으로 엘렌이 프랑스어 책을 추천해줬던 일을 떠올리면서 얼마 되지 않는 프랑스어 책들을 구경하다 서점을 나섰다.
Saint-Étienne-du-Mont # 오후 수업은 프랑스어 중급문법 수업으로 시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아무래도 프랑스어는 시제 변화가 매우 다양하고 실수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시제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듯하다. 특히 시제 개념만으로 보기는 어려운 조건법이나 접속법이 겹치기 시작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수업 끝에는 {en retard, tard}, {par avance, d’avance, en avance}와 같은 표현들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점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Café Charlot Mairie de Paris Centre (IIIe arrondissement) Centre George Pompidou Centre George Pompidou # 저녁에는 버스를 타고 마레 지구로 나가 백팩과 텀블러를 하나 샀다. 마레지구 북부에서 백팩을 사고 마레지구 남부에서 텀블러를 샀으니 자연히 마레 지구를 쭉 횡단하게 되었다. 백팩은 이전에 보아둔 가게에서 바로 샀지만, 오히려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텀블러는 발품을 팔아야 했다. 카페에서 사자니 가격이 비싸서 이곳저곳 더 돌아다니다가 샤틀레-레 알 역의 Du bruit dans la maison에서 적당한 가격에 구매했다. (다음번엔 Du bruit dans la cuisine을 가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둘 다 요긴하게 쓸 것 같다.
아직 프랑스어와 영어를 뒤섞어 쓸 때가 있어서 텀블러(tumbler)를 찾았더니 직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물병(bouteille)을 찾아야 의사소통이 될 수 있었다. 3구쪽에는 유난히 길마다 중국식 홍등이 달려 있던데 무슨 행사인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은 RER(Réseau Express Régional)을 타고 포흐후아얄(Port-Royal)에서 내렸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기숙사까지 걸어온다. 내일도 맑은 날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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