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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의 일기: 방브 벼룩시장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12. 19:48
# 아침에는 59번 버스를 타고 방브 벼룩시장(Puces de Vanves)에 다녀왔다. 지하철보다는 버스로 오가기 편한 곳이다. 59번 버스는 몽파르나스 묘지와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 포흐트 드 방브(Pte de Vanves)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방브 벼룩시장에 도착했다.
황학동 벼룩시장도 몇 번 가보았지만 방브 벼룩시장도 그만큼이나 크다. 모히스 노그 가(R Maurice Nogues)를 다 돌고도 순환도로가 나타나는 지점까지 진열대가 끝도 모르게 이어진다. 오늘의 목적은 와인잔과 밥그릇(!)을 사는 것이다. 가격대가 천차만별이고 물건의 종류도 워낙 다양해서 어떤 물건을 얼마에 사야 좋은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중고품을 파는 곳도 있지만, 특정한 공방에서 물건을 떼와서 파는 곳도 있다. 방브 벼룩시장에서 주된 품목은 식기와 조각, 서적들이다보니 마침 잘 찾아왔다 싶었다.
다행히도 물건을 파는 곳 중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와인잔 두 개, 사기그릇 하나에 11유로. 어지간한 슈퍼마켓이나 식기용품점보다 가격은 저렴하고 개성 있는 물건이다. 앞서 둘러본 가게들은 비슷한 제품이 15~20유로 선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서, 잘 샀다 싶게 물건을 사려면 벼룩시장 안에서도 꽤나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물건을 산 곳은 초입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주머니가 친절하게도 빈손으로 온 내가 유리 제품들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종이 가방을 주셨다. 다음에 올 때는 뭐라도 메고 와야겠다.
밥그릇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원래는 오목하고 둥근 그릇을 원했는데 내가 찾는 형태에 맞을 듯 맞지 않는 그릇들 뿐이어서 세 번이나 같은 길목을 둘러보다가 와인잔을 샀던 곳에서 밥그릇 대용을 샀다. 어떤 매대는 성의껏 진열을 해놓고, 어떤 곳은 공산품 같은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 있기도 해서 괜찮은 물건을 구분하려면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한다. 어떤 곳은 가격을 물어보면, 낱개로는 팔지 않고 12개 묶음으로만 판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구경하는 건 재미있는데 너무 추운 날씨였다. 시장의 길목이 빙 구부러지는 지점에 노점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여도 발이 꽁꽁 언다. 요새 날씨가 풀리다보니 두꺼운 신발 대신 가벼운 스니커즈를 신고 온 상태였다. 더 구경을 하려고 해도 추워서 메트로로 피신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래도 나비고 이지에서 나비고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 포흐트 드 방브(Pte de Vanves) 역에서 메트로 직원에게 관련된 정보를 한참 물었다. 요금제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귀찮을 만도 한데 다행히 역무원이 가격 비교가 되도록 메모를 적어가며 엄청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다. 한 달에 얼추 다섯 까르네(티켓 10장 묶음)를 쓰는 것 같다고 했더니 가성비로 볼 때 왜 나비고 1개월권을 쓰지 않느냐고 했다. 또한 뤽상부르 역 근처에 산다고 했더니 오데옹 역으로 가면 구입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돌아올 때는 59번 버스가 몽파르나스의 지하납골당 이후 더 이상 가지 않아, 38번으로 갈아타고 일단 포흐후아얄까지 왔다. 원래는 곧장 기숙사로 들어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바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학교에서 식사할 때가 아니면 대체로 테이크아웃하거나 공용주방에서 만들어 먹다보니 낮시간에 레스토랑에서 먹은 게 언제였던지 모르겠다.
# 오후에는 학교에서 논문을 읽는 데 시간을 보냈다. 추워서 더 돌아다닐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머리도 식힐 겸 밖으로 나와 간다는 게 또 다시 메트로다(..) 나비고 하나 사는 게 왜 이리 복잡한지, Odéon 역은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거리가 꽤 멀어서 Place Monge 역을 갔더니 나비고 발급을 담당하는 역이 따로 있다고 해서, Censier-Daubenton으로 이동했다. (메트로에 가서 역무원에게 물어볼 때마다 설명해주는 내용 가운데 어딘가를 부분부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강 건너 Sully-Morland 역이 사람이 적어서 카드를 발급받기 수월할 거라고 추천하는 걸 그냥 Censier-Daubenton 역으로 갔다. 새 승차권을 발급받고 충전하겠다는데 왜 승차권이 필요한 거리에 있는 강 건너편 역으로 굳이 안내하는지 잘 이해되진 않는다.
파리의 대중교통은 장점도 참 많지만, ‘잘 타기’까지가 참 어렵기도 하다. 나비고 때문에 역을 몇 번을 방문했는지 모른다(=_=) 요금제도 복잡하다보니 가성비를 따지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나마 통합 개편되었다는 게 이 정도니..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까르네를 사는 것과 나비고 패스를 사는 것 사이에 금액상 큰 차이가 없어 보여서 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여하간 마침내 나비고 패스를 손에 넣고 월요일부터 발효되는 1주일권을 충전했다.
# 이러한 절차상의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파리가 대중교통망이 잘 갖춰진 도시라는 건 분명하다. 메트로도 그렇지만 특히 버스도 잘 되어 있다. 가장 먼저 버스 교통망이 굉장히 '체계적'이다. 버스 정류소는 대체로 사거리에 근처에 위치하는데, 옵제흐바투아 대로(Av. de l’Observatoire)와 포흐후아얄 거리(Bd. de Port-Royal)가 교차한다면 정류소명이 Observatoire-Port Royal이 되는 식이다. 그래서 버스 정류소가 어디쯤에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메트로나 트램과의 연계성도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버스 정류소명에 ‘-앞’, ‘-학교’, ‘××아파트 ××단지’와 같은 명칭이 붙는데 이는 그 장소를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명칭 자체는 대도시라는 큰 공간 안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파리 시내버스의 또 다른 장점은 통일성 또는 일관성이다. 서울 시내버스는 색깔—빨강(광역), 파랑(간선), 초록(지선), 노랑(순환)—을 보면 버스의 기능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파리의 시내버스도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서울처럼 기능에 따른 구분은 아니고 메트로처럼 각 노선마다 색깔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파리는 서울 면적의 6분의 1에 불과하고, 버스노선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또한 오래된 건축물이 워낙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의 특성상 건물이나 도로에 큰 변화가 없어서 명칭이나 노선 또한 조정될 일이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파리의 시내버스는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에서 메트로폴리스의 수송수단으로써 효과적이기도 하다. 파리 도심의 많은 비스트로나 브라세리는 새벽 두 시까지 영업한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보다 1~2시간 늦게 시작되고 식사 시간은 긴 편이다. 심야시간에도 도시의 교통은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서울에도 N-으로 시작하는 노선이 올빼미버스인 것처럼, 파리도 N-으로 시작하는 노선으로 녹틸리앙(Noctilien)이 50개 조금 안 되게 있다. 메트로가 끊기는 시간에는 녹틸리앙이 교통 공백을 메운다.
이렇게 촘촘히 교통망이 들어설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근교(Banlieue)의 기능을 흡수하고 있는 서울에 비해 파리라는 공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파리는 시간적으로도 도시 계획이 시작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교통망의 틀이 잡혀 있는 듯한 느낌이고, 대신 서울은 더 많은 유동인구를 감당하고 급속한 도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통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파리의 장점으로 확실히 우위를 둘 만한 점은 도심에서 교통체증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외곽순환도로, 시간에 따라서는 센 강 인근을 빼면 차량이 많아서 불편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더 큰 장점은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항상 보행자가 우선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횡단보도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건널 수 있는 게 어색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편한 환경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부분은 우리나라도 꼭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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