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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의 일기: 자전거(Vélib’)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1. 17:08
#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으며 재정학 공부를 했다. 오전 열 시를 조금 넘겼을 때, 학교를 나와 잠시 센느 강변으로 나갔다. 어제 등록해 둔 벨리브(Vélib')—대전시의 타슈나 서울시의 따릉이와 같은 파리의 공유 자전거 시스템—를 이용할 겸, 자전거를 이용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향했다.
파리는 오래되고 협소한 도로가 워낙 많다보니 일방통행 도로를 구분해야 한다. 때문에 자전거를 탈 때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팡테옹을 지나 잠시 방향을 잃어 길을 잘못 접어들었는데, 맞은편 방향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남자가 손을 들어올리며 주행방향을 두고 뭐라뭐라 불평하는 말을 했다. 사실 그것도 좀 애매하기는 하다. 내가 지내는 윔 가의 경우도 차량은 일방통행로이지만 자전거는 양방향 통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방향도 방향이지만, 아스팔트가 아니라 돌로 된 도로는 주행감이 나빠서 자전거 타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오래된 걸 잘 건드리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의 특성상, 벨리브에 최적화된 도로를 만들고 플랫폼을 설치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공사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운영이나 서비스질 측면에서 초창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일단 파리 시내를 보면 벨리브는 잘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파리에 벨리브가 도입된 게 2007년인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유 자전거를 도입한 대전의 타슈가 2008년에 출범했다.) 일단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고, 나비고 카드나 어플과도 연동이 잘 되어 있어서 이용이 간편하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달고 파리 시장이 파리를 생태도시로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벨리브와 같은 교통 개선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벨리브 어플의 경우 사용자 본인이 탄소발자국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UI가 구현되어 있는데, 언뜻 봐서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 파리 시내의 자전거 사용만으로 환경문제에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환경문제는 지역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전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환기하고 동참을 독려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효과적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에서는 상투적일 만큼 환경문제에 관한 표어를 접하기 쉬운데, 거꾸로 말하면 다른 먹고 사는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밀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효율성이나 편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살아가지만, 단순히 어떤 잣대를 들이대어서 평가하기는 어려운 정서적 만족감과 물질적 안정을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정치적인 양극화를 보면 프랑스 사회에 사회불안이 뿌리깊다는 걸 알 수 있어서 그런 불안의 가지가 어디서 뻗어나오는지는 더 지켜볼 문제다.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조금 책을 읽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편물을 수령했는데 당연히 소시에테 제네랄에서 도착한 우편물일 거라 생각했다. 벌써 은행을 방문한지도 꼬박 한 달이 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한국에서 온 우편물이었는데 지난 주 결제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신청한 체크카드였다. 우리나라 서비스의 신속함을 새삼 깨닫는다. 한국에 있을 때 종종 절차를 두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지만, 이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뿐 아니라 수강강좌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문제로 단과대와 학교본부에 같이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두 쪽 모두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고 있어서 조금씩 부아가 치밀고 있는 중이다.
# 월요일 오후는 수업이 가득 찬 날이다. 연금 정책과 재정학 수업을 연달아 듣는다. 연금 정책은 기대수명과 노인빈곤율, 노년의 건강에 관한 문제와 연금을 연결지어서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접목해 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운 내용이다. 내부수익률(Internal Rate of Return; IRR)에 관해 새뮤얼슨의 논의를 가져와 연금의 가치를 산출하는 논의도 흥미로웠다.
저녁 재정학 수업은 지난 수업에 이어 구조적인 경기 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 재정 방침에 대해 논의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건 명목 재정수지에 경기 변동을 반영한 경기조정 재정수지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는 세금, 국내총생산, 정부지출 등과 긴요하게 맞물려 있다.
오늘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은 정부는 과연 잠재성장률을 예측하는 데 어느 정도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잠재성장률을 측정함에 있어서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였다. 미래의 재정상황을 낙관하거나 잘못 측정해서 재정적자로 이어진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AD 교수의 답변은 아니올시다, 다. 실제 일을 할 때, 예측지를 의도적으로 보정하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정에도 부수적인 오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각론으로 넘어가 EU의 재정 운영에 관한 내용이 주로 다뤄졌다.
# 오늘은 일본인 학생인 소이치(S)와 좀 더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월요일 수업 두 개를 모두 함께 듣는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짧은 겨울 바캉스 이야기를 나누는데, S는 잠정적으로 바캉스 첫 주는 집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고 한다. 다시 이야기를 듣다보니 S는 산업통상성—재무성과 헷갈렸다—에서 일하고 했는데, 부처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와서 5월 즈음에 일본으로 귀국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주말을 제외하면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서 새벽 두 시에 퇴근하는 일상이라며,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과중한 업무를 미덕으로 여기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모양이어서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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