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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의 일기: 봄(春)인가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2. 19:22
# 오늘 아침 수업에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21번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몰라 자전거를 탔는데, 불과 15분만에 14구 캠퍼스에 도착했다. 평소 버스를 타면 25분이 걸리니까 오히려 시간이 적게 걸린 셈이다. 아침 시간이다보니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머리가 희끗한 사람이나 여자들이 나보다도 자전거를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탄다.
오전 수업은 노동경제학 수업으로 TB교수에서 FF교수로 수업진행이 바뀐 이후로 활력을 많이 잃은 듯하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실업급여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지난 시간과 달리 질의응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수업 중 독일친구들이 대체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편인데, 오늘은 독일친구들 뿐만 아니라 반 전체가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나마 이탈리아에서 온 케빈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지만 대부분이 이론에 대한 질문보다는 현실 적용에 관한 질문이었다.
# 오후에는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이번 주부터 길게는 2주 가까이 바캉스가 이어진다. 수업일정이 제각각이고 어떤 수업은 보충수업이 이뤄지기도 해서 온전히 2주를 쉬는 건 아니지만, 이번 주에 이틀 정도 일정을 잡아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을 다녀오기로 했다. 학기가 진행된 건 한달 여밖에 되지 않았는데, 수업도 수업이지만 전반적으로 적응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근래에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던 차였다.
몽생미셸은 일드프랑스와 가까우면서도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매우 까다로운 지역이다. 아예 아침에 출발했다면 고려해볼 수 있는 교통편도 많지만, 오전에 수업을 듣고 오후에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쳤다. 대중교통이 복잡할 줄 알았다면 미리 정보를 찾아보는 건데, 그나마 찾아본 정보들도 올바르지 않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조금 헤맸다.
일단 파리에서 출발역은 몽파르나스 역이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생말로(Saint Malo) 방면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다. 화요일 오후인데도 몽파르나스 역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로 매우 복잡하다. 어수선한 인파를 가로지르며 무장한 경찰이 짝을 이루어 삼엄하게 경계업무를 다닌다. 하지만 이런 복잡함도 잠시, 열차가 출발하면서 곧 프랑스의 목가적인 풍경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인구밀도가 우리나라보다 낮기는 낮구나 실감할 정도로 평화로운 평원이 펼쳐진다.
케빈도 말했지만 사실 프랑스처럼 일처리를 하는 나라가 이만큼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킨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가끔 난감(?)하다. TGV(Train à Grande Vitesse)는 이름 그대로 시원하게 들판을 가로지른다. 한국에 있으면서 프랑스 문화는 접할 일이 많지만, 어쩌다 프랑스 기술을 접하게 되면 생각보다 매우 잘 갖춰져 있어서 내심 놀란다. 물론 우리나라가 고속철도를 깔면서 TGV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는 유럽 안에서 과학기술은 독일, 문화는 프랑스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렌느(Rennes) 역에 도착하기 직전 20분 정도 단잠에 빠졌던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렌느 (또는 헨느) 역에서 버스를 타고 몽생미셸까지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후 1시대에 이미 모든 버스 운행이 마감되었고, 내가 렌느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3시 반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6시에 퐁토흐송(Pontorson)으로 들어가는 TER(Train Express Régional) 승차권을 끊었다. 퐁토흐송은 열차가 지나가는 도시 가운데 몽생미셸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아마 퐁토흐송에 도착하면 저녁 7시가 좀 안 될 것이고, 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할 것이다. 오늘 오후는 파리에서 몽생미셸까지 이동하는 데 모든 시간을 쓸 것 같다.
# 퐁토흐송은 매우 작은 동네여서 우리나라로 치면 읍 정도 규모가 될 것 같다. 퐁토흐송에서 다시 한 번 버스로 갈아타고 몽생미셸 앞까지 이동했다. 퐁토흐송에 숙소를 정할까도 생각을 했지만 아침에 몽생미셸까지 버스를 타자니 귀찮게 느껴졌고,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늘 다 끝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몽생미셸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운행을 마감했을 시각이었고, 몽생미셸 입구에 내렸을 때가 저녁 7시 반쯤 되었을 때다.
파리를 벗어나는 첫 여행으로는 꽤 어려운 곳을 고른 것 같다. 사실 파리에서 렌느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게다가 TGV가 중간에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기 때문에 렌느까지 도착하는 데는 두 시간이 안 되게 걸렸다. 하지만 열차가 많지 않아 두 시간을 역에서 기다렸다가, TER을 타고 퐁토흐송까지 가는 데 한 시간 가량이 걸렸다. 버스까지 타다보니 결국 오늘 길 위에서 보낸 시간만 여섯 시간이 넘는데, 미리 계산을 잘 하고 왔더라도 상당히 먼 길이었을 것 같다. 애당초 이틀을 생각하고 오길 잘 한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많이 알려진 관광지일 수록 물가가 비싼데, 과연 몽생미셸도 그렇다. 나처럼 혼자서 온 배낭여행객에게는 가성비를 따질 만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몽생미셸 근처에는 카페도 비스트로도 없이 죄다 레스토랑뿐이고 비수기여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딱 한 곳만 문을 열었다. 그나마 가장 저렴한 숙소를 택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프랑스 물가를 실감했다.
#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보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생방송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토론 방송을 프랑스어로 보는 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독일에 비해 동유럽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실제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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