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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의 일기: 타인(他人)으로 살아가는 것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5. 01:39
# 학교는 이번 주부터 2주간의 짧은 겨울방학에 돌입했다. 그래서인지 기숙사 밖을 보면 항상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연구실이 한두 곳 정도는 꼭 있었는데, 요즈음은 밤에 불이 들어온 연구실은 찾아볼 수 없다. L 역시 본가가 있는 칸느로 내려간다고 했었다. 하지만 식당이나 사무실처럼 기본적인 업무들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의외로 바캉스 기간에도 학교를 오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에서 아주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그냥 떠들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얼마전 만난 박사과정생처럼 바캉스 기간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문학 연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 안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는 바캉스 일정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교정의 리듬은 한 박자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그 사이 봄은 빠르게 찾아오는 듯하다.
#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를 떠올리면 흔히 자유, 평등, 박애라는 문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면 프랑스 사회의 엘리트주의는 한국 사회보다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더 견고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프랑스인들의 분방함에 가려져 일상에서 느끼지 못할 뿐, 커다란 틀에서 프랑스 사회는 위계가 명확하고 그 위계의 정점에 있는 소수 학교 출신의 지도자들이 사회를 주도해 간다.
프랑스 교육시스템이 형식적으로 ‘평등함’을 표방하고 있는 것은 맞다. 대학들이 평준화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수능이라 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를 응시하고 점수를 얻으면 누구든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이라는 특수한 교육기관을 두고 있어서,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프레파(prépa)—말 그대로 입시준비—를 통해 유명한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다.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하다. 루이 르그랑 고등학교(Lycée Louis le Grand), 앙리 4세 고등학교(Lycée Henri IV) 등 유명 고등학교들은 파리 5구의 라탕 지구 한복판인 소르본 대학과 팡테옹 바로 옆에 있다.
우리나라 또한 ‘모로 가도 서울이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파리에 위치한 유명 고등학교와 유명 그랑제꼴이 지니는 상징성은 좀 남다르다.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당인 팡테옹을 에워싸고 앞선 학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팡테옹에는 볼테르, 루소,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 빅토르 위고 등의 유명 인사가 안장이 되어 있는데, 미라보처럼 사후에 결격 사유가 발견되어 퇴출된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자격’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프랑스인들의 성향이 엿보인다. 또 소르본 대학이나 팡테옹의 건축양식은 겉으로 보아서는 종교건축물인 교회와 다르지 않아서, 주변 건축물과 비교해보아도 신격화된 이미지가 전달된다. 이처럼 교육기관의 집적도(集積度)라는 측면에서 파리는 프랑스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학교에서 지내다보면 학생들이 그 쟁쟁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맞나 싶을 만큼 자유로워 보인다. 이는 지적 역량을 측정할 때 구술과 발화 능력을 강조하는 프랑스 교육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일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물론 학문적 글쓰기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도 어느 순간 자유로움의 균열을 비집고 묘한 긴장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곳 학생들도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할 때 얼굴이 홍당무가 되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등 본인의 능력을 의심받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대개는 평범해 보이는 학생들이지만 프랑스에서 이들 엘리트 사회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멘소리가 나오는 건, 이방인인 내가 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프랑스는 사실 한국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배움’을 최고의 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단순히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국공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프랑스의 엘리트주의와 파생되는 또 다른 특징은 피라미드처럼 아래로 이어지는 사회의 위계 질서다. 자유, 평등, 박애를 강조하는 이곳에서도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위계’라는 각자의 선반 위에서 살아간다. ‘시민’이라는 동등한 행정적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이 향유하는 사회적 또는 문화적 신분이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의 6분의 1 크기에 불과한 파리, 그 안의 20개 구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태가 어떻게 다른지 꼼꼼히 관찰하고 따지는 사람들이다.
한국과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라면 한 단계 위에 있는 계층에 올라가기 위해서 각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갖는 장점은 자신이 ‘위치’한 신분과 직업에 있어서 충실히 자신의 일을 해낸다는 점이다. 소방관은 소방관답게 일하고 경찰은 경찰답게 일하는데,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유교 관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굳이 경쟁을 벌이지 않고 자족하기 때문에, 일면 사회에 활력이 없거나 근로의욕이 약하다는 점은 단점이 된다. 프랑스의 경화(硬化)된 행정시스템은 그러한 사회 특성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 사회의 장단점은 이를 뒤집어 놓으면 될 것이다. 소모적인 경쟁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어쨌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로써 정당화될 수 있다. 모두가 이동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며, 경쟁의 진척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준거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비교한다. 이는 모두에게 조금씩 피곤한 방식이라 하겠다.
프랑스 사회와 같은 곳에서는 장인(匠人) 문화가 발달하기 쉽다. 기계로도 작업할 수 없는 아주 세밀한 선을 이어붙이는 금은세공사, 아주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요리사, 희귀서적이나 고서적에 파묻혀 옛 문헌에 빠져 있는 골방의 사상가, 매일마다 같은 장소에 팔레트를 들고 나와 그림을 그리는 화가, 오래된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배치하는 큐레이터, 온갖 패턴들을 비교하고 색상을 얹어가며 변덕스럽게 남다른 미학을 고집하는 패션 디자이너, 백 년이 넘은 선로의 설계도를 읽어내려가며 알맞은 부속품을 고민하는 메트로의 엔지니어 등등등.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 사회에서는 축적된 사회적 불만이 때때로 매우 돌발적이고 급격한, 어떤 때는 폭력적인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중심부 엘리트 사회의 바깥에는 이를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이 늘상 있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은 논쟁을 좋아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 사람들의 타고나는 기질이라기보다는 프랑스 사회에 내재된 긴장감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습득하는 특징인 것 같다.
프랑스 자체는 온화한 기후와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고 도시가 형성되기에도 적합한 지형이 많아서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좋은 곳이다. 하지만 유럽 안에서 유난히 절대왕정이 힘을 발휘했고, 오늘날 그랑제꼴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가 득세하는 프랑스의 기나긴 서사를 들여다보면 지배계층 바깥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급진적인 반동이 상존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는 서로 다른 생활양식과 척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코뮌이 있지만, 오늘날까지 중앙정부라는 구심력을 통해 이를 다스리려는 통치방식을 발전시켜왔을지언정, 독일처럼 느슨한 연방으로 꾸려진 통치체제를 구성한 경험은 없다. 때문에 독일은 주변국에 끼인 대륙유럽 국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의심하고 증명하려고 했던 나라라면, 프랑스는 일찍이 완결된 국가를 이루고 있되 그 안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이 상박(相撲)을 겨뤘던 나라다.
중심부에 맞서는 프랑스인들의 격렬한 원심력은, 멀리 프랑스 혁명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테섬 바로 맞은 편의 히볼리 59를 보면 알 수 있다. 도시 한복판의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관료들과 협상한 끝에 결국 자신들의 스튜디오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파업(破業)은 일(業)을 분쇄(破)한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기에 앞서, 그냥 파업(grève)일 뿐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 생활적 요소다. 프랑스어 ‘grève’의 어원은 라틴어 ‘grava’에서 유래하고, 라틴어 ‘grava’는 기본적으로 조약돌이나 모래로 된 땅을 가리킨다. 따라서 ‘grava’에 나앉는 행위 자체를 ‘시위’나 ‘파업’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의 흐름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외국 사람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누군가의 생업이나 일상에 지장이 생겨도 괘념치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상당히 맥락이 다르기는 하지만 유난히 프랑스에 집중되고 있는 테러도 이러한 사회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다는 점,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잘못된 식민정책, 이민자 2~3세의 만성적 빈곤, 2000년대 이후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대두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해도, 도대체 결정적으로 무엇이 파리에서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긴장은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프랑스와는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시위와 집회가 활발한 편이다.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인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하여간 프랑스 사회를 보다보면 길항작용(拮抗作用)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균열이 표면화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하나의 작용으로써 잘 매듭지어지고 사회가 건강하다는 시그널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점검이 필요한 것 같다.
# 오늘 오후 문화인류학 수업이 끝난 뒤, 세 번째로 퐁피두 센터를 찾았다. 나를 태운 21번 버스는 오늘은 어쩐 일인지 시테섬에서 퐁뇌프 다리로 우회하지 않고 생미셸 다리로 직행한다. 덕분에 퐁피두 센터까지 채 30분이 안 돼서 도착했다. 퐁피두 센터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잘 지어놨다는 생각을 한다. 미술관이 자리한 위치나, 기능이나, 건축양식이나 최적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퐁피두 센터에서 아직 둘러보지 못하고 남은 구간은 4층 전시실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만큼 보는 부담도 적다. 굳이 해석을 덧붙이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예술이라는 탈만 걸친 것 같은 작품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5층 전시실에서 4층 전시실로 넘어가는 구간, 그러니까 20세기 중반에 제작된 작품들이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4층 전시실의 특기할 만한 점은 베를린이나 뒤셀도르프를 무대로 활동하는 독일 작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 독일 작가들의 작품이 비중 있게 시선을 잡아 끌었다.
두 시간 정도 관람을 하고 나니 4층 전시실에서 둘러보지 못했던 곳들을 딱 알맞게 둘러볼 수 있었다. 세 번의 방문으로 퐁피두 센터를 한 바퀴 다 돌기는 했지만, 수시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기 때문에 퐁피두 센터가 소장한 작품들을 다 감상한 것은 아니다. 퐁피두 센터는 야외에서 보는 시내 경관 때문에도 좋아하는 곳인데, 당분간은 파리에서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다른 미술관들을 차차 둘러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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