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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의 일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5. 17:58
# 아침에는 소르본 대학 앞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기숙사로 돌아온 뒤에는 L과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L이 바캉스를 가게 되면서 이번 주 통화를 한 번 하자고 얘기를 했었었다. 칸느에 도착한 L은 바캉스를 잘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맑고 온화한 날씨, 가족들, 해안가, 마르세이유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오빠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게는 몰리에르의 연극을 잘 보았느냐고 물었다.
서로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장 콕토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내가 퐁피두 센터를 좋아한다고 하자, 근대미술을 좋아하는 L은 오르세 미술관을 매주 간다고 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피에르 보나흐(Pierre Bonnard)를 좋아한다는 이야기하는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후기 인상주의는 전시실을 아직 둘러보지 않아서 어떤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장 콕토를 극작가나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L에 따르면 예술작품도 여럿 만들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모티브로 하는 장 콕토의 벽화를 한참 설명한다. 에우리디케, 켄타우로스처럼 그리스 신화 속 여러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덧붙이면서. 프랑스어로는 각각의 인물이 오흐페(Orphée), 으히디스(Eurydice), 성토흐(Centaure)로 발음되기 때문에, 이들이 신화(mythologie) 속 인물이라는 힌트를 얻고서야 무슨 말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L이 말하는 보나흐의 작품이나 장 콕토의 작품은 색감이나 분위기가 비슷해서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 최승자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산다’고 말했지만, 종종 혼신을 다해도 또 혼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수필집에서 ‘매일매일 조금이나마 나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고 했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허들을 넘는다는 게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하루키는 참으로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제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것만으로 시간도 힘도 부족하다. 물론 그런 그도 다른 소설에서는 누구나가 각자의 지옥 안에서 살아간다고 한 바 있다.
허들을 운운하기에 내 삶에 우여곡절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건만, 어딘가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잃었다고 느끼는 건, 조금은 삐딱한 나의 시선과 뿌리깊은 생각, 바람(望)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알든 몰랐든 쉽게 바꾸기 어려운 내 모습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그런 내 모습에 괴로워하던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많은 부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나를 마주하고 외면하고 싶을 때는 찾아온다.
애드거 앨런 포는 어느 단편소설집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사기를 치는 동물’이라고 했다. 사냥감을 앞에 두고 위장을 하는 동물은 있지만, 인간처럼 변덕스런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기만하는 동물은 없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문제이기보다는 세상의 문제일 수 있다고도 생각해본다. 세상이 거대한 사기극이거나 거대한 실험장인 거라고. 하지만 까닭을 내 안에서 찾든 밖에서 찾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게 된다.
심심하고 무료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던 오늘 하루는 생각보다 금방 흘러갔다. 바람에 떠다니는 홑씨처럼 정처 없었던 오늘 하루의 기록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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