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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의 일기: 환대(歓待)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6. 21:35
# 툴루즈 행 열차가 아우스터리츠 역을 출발한 건 오후 2시 39분이다. 아침에는 은행업무를 보고—다른 절차 때문에 다음번에 한 번 더 방문해 달라고 한다—카페에서 책을 조금 읽다가, 점심을 먹은 뒤 간단히 짐을꾸려 아우스터리츠 역으로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다. 아우스터리츠 역 자전거 거치대에는 자전거를 세워 놓을 곳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다행히 젊은 청년 한 명이 도움을 주어서 먼 길을 우회하지 않고 자전거를 세워놓을 수 있었다.
아우스터리츠 역을 출발한 열차는 레조브헤(Les Aubrais), 비에흐종(Vierzon), 샤토후(Châtearoux), 리모주(Limouge), 브히브 라 게야흐(Brive la Gaillard), 수이약(Souillac), 구흐동(Gourdon), 캬오흐(Cahors), 코사드(Caussade), 몽토벙(Montauban)을 차례로 지나 툴루즈 역에 도착했다. 장장 여섯 시간 반에 이르는 여정이었고, 오는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 점심에 출발해서 한밤이 되어야 툴루즈에 도착했는데, 마흐의 집에서는 저녁 모임(Soirée) 중이었다. 그동안 이런 친목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고 있었다. 마흐가 동석을 해도 좋다고 하기에 잠깐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게 생각보다 길어져서 간단한 저녁식사까지 대접받았다.
특히 술을 많이 먹어서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했다가, 화이트와인, 샴페인, 칵테일까지 마셨다. 툴루즈 지역은 아르마냑이 유명하기 때문에 샴페인을 강력히 권한다. 비싼 샴페인이라고 하는데,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와인이나 샴페인을 즐겨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먹어도 되는지 싶었다. 다음으로는 캬라히오—정확히 어떤 명칭인지 모르겠다—라는 칵테일을 먹어보라고 권해주었는데, 커피가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독한 술이었다.
마흐는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았는지, 계속 내게 이것저것 먹어보라며 권했고, 사람들은 (나보다 술을 덜 마셨음에도) 점점 취해가는 것 같았다. 한국도 서울보다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좀 더 인심을 느낄 수 있듯, 프랑스도 파리를 벗어나면 사람들이 더 허울 없이 대하는 것 같다. 파리 사람들이 깍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워낙 대도시여서 그런지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는 듯하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틀어가면서 흥겹게 저녁 식사를 한다. 내 귀에 익은 샹송도 틀어주고 이것저것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해주어서 고마운 일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무프타흐 시장 근처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토미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 몰타에 지내면서 한국인들을 여럿 보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인들과 이렇게 가까이서 오랜 시간 얘기하는 건 처음이다. 밤 열한 시 쯤 식탁 앞에 앉은 게 방으로 돌아오니새벽 한 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식탁 한가운데 올라 앉아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고양이 매튜를 보니 집의 강아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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