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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의 일기: 풍화(風化)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20. 20:27
# 늦잠을 자고 늦은 오후부터는 소르본 대학 앞의 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에는 조깅도 하고 요리도 하곤 했지만, 오늘은 만사가 귀찮아서 쉬기로 했다. 박경리의 소설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해는 길어졌지만 좀처럼 기온을 풀리지 않고, 오늘은 바람까지 불어서 꽤나 춥게 느껴진다. 점심 생각도 들지 않아 1시를 넘겨 책을 읽다가 카페를 나섰다.
# 오후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방센느 숲을 가보고 싶어졌다. 카페와 비스트로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는 파리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으리라. 이전에 불로뉴 숲을 갔으니 오늘은 방센느 숲을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니 방센느 숲 북쪽으로 방센느 성이 있어서 일단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파업 때문이겠지만 RER은 운행하지 않아서, 리볼리까지 걸어서 이동한 다음 노란색 1호선을 타고 이동했다.
방센느 성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으로 거처를 옮긴 1682년까지 프랑스 왕궁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본격적으로 축조되기 시작한 게 14세기부터라고 하니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다. 사실 왕가가 방센느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사냥터로 활용되었던 12세기까지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던 것이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왕이 잉글랜드 군에 잡혀간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성채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4세기에 들어 뱅센느 성의 확충이 이뤄진다. 이때 프랑스왕 장 2세에게 대대적인 건축을 건의한 게 오늘날 파리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름으로 남아 있기도 한 에티엔느 마흐셀(Étienne Marcel)이다.
그렇다면 몇 주 전 시테궁에서 보았던 설명에 따를 때 루브르궁과 어떻게 역할 분담이 되었던 건지 조금 헷갈린다. 잦은 침수와 고립된 지형으로 인해 시테궁에서 루브르궁으로 왕궁을 옮기게 된 사연까지는 들었지만, 그 와중에 뱅센느 성 확충이 함께 이뤄졌다는 뜻이다. 일단 재판과 관료정치 기능이 17세기 루이 14세에 의해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겨갈 때까지 왕궁의 기능이 조금씩 양분되어 있었던 건가 짐작만 해보았다. 다만 루브르 궁의 경우 중세에 성(Château)이었던 것을 16세기 프랑수아 1세의 주도 하에 궁전(Palais)으로 재건한 반면, 뱅센느 성은 성(Château)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돋보인다. 즉 요새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시테궁에 속한 콩시에르주리와 뱅센느 성의 아이러니한 공통점은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감옥으로도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뱅센느 성의 망루에는 디드로(Denis Diderot)나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등 성에 투옥되었던 유명 인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디드로는 『맹인서간(Lettre sur les aveugles)』에서 무신론을 나타냈다는 사유로, 사드 후작은 음란한 작품을 유포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난봉꾼이었던 사드 후작의 방탕한 경력은 후일 '사디즘(Sadism)'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에티엔 마흐셀의 간언과 더불어 동시대에 조성되었고, 왕의 거주공간이자 통치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루브르 궁(Palais du Louvre)과 뱅센느 성(Château de Vincennes)은 경복궁(景福宮)과 창덕궁(昌德宮) 사이의 역할 분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외관을 통해 곧바로 알 수 있듯이 뱅센느 성은 해자(垓子)가 아주 크게 조성되어 있어서 방어에 뛰어난 반면, 루브르 궁은 시테에 인접한 파리의 중심지로서 자연스레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사실은 뱅센느 성을 출발지점으로 해서 뱅센느 숲을 둘러보는 게 처음 목적이었는데, 뱅센느 성을 둘러보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가장 먼저 동종(Donjon)—영어로는 Dungeon이 될 것이다—이라는 망루를 구경한 다음 투흐 뒤 부아(Tour du Bois)를 가로질러 왕과 여왕의 파빌리온을 둘러보았다. 끝까지 가로질러 방센느 숲을 바라본 뒤, 되돌아와 생트 샤펠 성당을 둘러보았다. 시테섬에서 보았던 생트 샤펠의 잔상이 너무 강렬한 탓에, 벵센느 성의 생트 샤펠은 밋밋한 느낌도 있다. 성당에는 나폴레옹 정권을 전복하려 한다는 잘못된 첩보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엉기엉 공작(duc d’Enghien)의 묘소가 있고 윗층으로 올라가서 성당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저녁 여섯 시면 문을 닫는데 오후 다섯 시가 다 되도록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줄지 않았다. 나는 성을 나선 다음 다시 1호선을 탄 다음 리옹 역에 내려 24번 버스로 갈아탔다. 팡테옹이 종점인 24번 버스는 학교 코앞에서 멈추어섰고, 기숙사에 들어간 나는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짧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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