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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의 일기: 힘들이지 않는 법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22. 06:20
# 중간에 바캉스가 끼어 있었지만 학기가 시작한지도 두 달이 넘어가는데, 갈수록 교실에 학생수가 줄어든다. 처음 수업에 들어왔던 인원을 생각해볼 때 대부분 수업의 경우 규모가 7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수업을 드랍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좋은 학점을 받느냐는 차치하더라도 수업의 평가요소들을 모두 수행하면 일단 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 기본조건은 갖춰지는데, 참여인원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건 일단은 해당과목 자체를 이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런 추세라면 학기가 끝날 때 쯤 인원이 더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신청한 대로 계속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 내가 특출나게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최대한 수업에 적응하면서 버틸 뿐이다.
# 오늘 연금정책 수업에는 드디어 연금개혁에 관한 부분을 다루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고, 4월에 2주간 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에 후보자와 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연금 정책은 그리 화두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파와 좌파에거 각각 내걸고 있는 연금정책 방향은 있다. 수업중 현실 정치를 얘기할 일은 없지만,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학생들도 정책방향에 대한 질문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된 질의응답이 사뭇 엄숙한 교수의 대답으로 인해 분위기가 꽤 진지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을 위시한 우파는 연금수령 시점을 늦추려 하고, 프랑수아 올랑드가 이끌었던 이전 좌파 정권에서는 연금수령 시점을 앞당기려고 했다. 수업에서 배우는 경제학적인 질문들과로 별개로 실제로 경제학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정치적 리스크가 함께 반영된다. 정치인들은 최대한 많은 표를 동원하기 위해 유권자의 구미에 맞는 구호를 앞세우지만, 정작 자신들이 내린 ‘선택(Choice)’이 한정된 자원 안에서 어떤 우선순위 설정을 필요로 하는지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령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은 연금수령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막상 연금재정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집권한 뒤 최초 공약에서 상당히 벗어난 단서들을 줄줄이 달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 표방하는 연금정책도 연금수령 시기가 늦춰짐에 따라서 위축되는 퇴직자들의 구매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교수의 의견이다.
# 저녁 재정학 수업에서는 지속가능한 정부재정 운영에 대한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Initial Budgetary Position과 Aging Drift를 감안한 정부재정에 관한 수식을 중심으로 문제풀이와 개념정리가 이어졌다. (각 개념이 한국어로 어떤 표현에 상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재정학 수업의 각 장(章)의 마지막은 항상 EU 차원에서 안정적인 재정운영이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귀결된다. 아직까지도 수업에 적응을 하는 중이고 점점 더 적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인데, 벌써 학기가 중반으로 접어들고 어떤 수업은 종강을 앞두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남은 수업 기간에나마 더 많이 질문하고 참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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