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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의 일기: 신기루(蜃氣樓)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19. 17:46
# 가끔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난 주부터 계속 그런 생각을 하다가 주말에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주 즉흥적으로 파리 동역에서 출발하는 에페흐네(Épernay) 행 열차를 탄 것이다. 주말 중 트레킹을 할 만한 장소로 너무 멀지 않은 곳 중에 셩파뉴(Champagne) 지방을 낙점했고, 마침 론리 플래닛에 마흔 강(la Marne)을 중심으로 한 트레킹 코스가 소개되어 있어서 이를 참고해 에페흐네에서 랭스(Reims)까지 가로질러 보기로 결심했다.
짐으로 물통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한 권만 딱 챙겼고, 파리 동역에서 트레킹 중에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샀다. 파리 동역을 출발한 열차는 샤토티에히(Château Thierry), 도흐멍(Dormans)을 거쳐 에페흐네(Épernay)에 도착했다. 나중에 퀴미에흐(Cumière)라는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페흐네를 중심으로 하는 셩파뉴 남부 일대는 와인재배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에페흐네 중심가를 빠져나와서는 호슈헤 가(R des Rocherets)를 따라 마흐둬이(Mardeuil)라는 작은 마을까지 걸어갔다. 날씨는 맑기는 했지만 완만한 언덕 사이 골짜기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시야가 탁 트이지는 않았다. 마흐둬이까지 완만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퀴미에흐로 향하는 길은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마흐둬이와 퀴미에흐 사이에는 마흔 강이 흐르고, 강 건너 퀴미에흐 마을부터 지역공원(Parc Naturel régional de la Montagne de Reims)이 시작된다. 토요일이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작은 마을에 사람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 이후 퀴미에흐 마을에서 오트비예 길(Rte d’Hautvillers)을 따라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 완만한 오르막길이 셩파뉴 지방의 포도밭을 구경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3월 하순인 지금은 포도나무에 새순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지만, 태동(胎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트비예(Hautvillers)라는 또 다른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딱 보아도 행락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인가밖에 보이지 않던 앞선 두 마을과 달리, ‘시음(Dégustation)’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농가들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원래는 셩피용(Champillon)까지 간 다음에 한 차례 쉴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수정해 셩피용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오트비예의 ‘Au 36’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라따뚜이와 함께 샴페인을 주문했다. 시음할 샴페인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데 나는 제일 간단한 구성을 주문했다. 피노 느와흐(Pinot Noir)는 생략하고, 샤흐도네(Chardonnay)와 뫼니에(Meunier)를 각각 한 잔씩 시음에 보았다. 직원은 샤흐도네가 더 가벼우므로 샤흐도네를 한 모금 먼저 마시고 이후 뫼니에와 번갈아 마실 것을 권했다. 처음에만 맛의 차이가 느껴지고, 번갈아 먹다보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데다 나중에는 라따뚜이를 먹는 데만 집중하게 되었다.
# 넓은 포도밭 사이를 다니다보니 어쩐지 스페인 작가 돌로레스 레돈도의 『테베의 테양』이라는 추리소설이 떠올랐다. 소설에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관한 묘사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런데 포도밭을 아무 생각없이 보다보면 포도라는 작물이 재배가 굉장히 까다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포도는 벼처럼 평지에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사면(斜面)에서 재배한다. 기계를 쓰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기계가 동원되기는 하지만 논에서 쓰이는 기계와 장비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그런데다 햇빛을 잘 쬘 수 있는 방향으로 포도를 정렬시키기 위해—신기하게도 정렬된 방향은 골짜기나 사면마다 약간씩 다르다—많은 양의 철사가 필요하다. 철사를 길다랗게 팽팽히 연결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뻗어나오는 가지가 철사를 따라서 자라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 보아도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갈 것 같은데, 와인 맛이 아무리 좋다한들 그 옛날에는 이 복잡한 과정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떻게 포도 농사를 지었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농사 자체가 그렇겠지만 포도 재배도 한 해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처음에 양지바른 언덕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포도나무의 밑동이 죽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까지 돌로레스 레돈도의 소설에 묘사된 그대로 매 절차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프랑스에서 지내다보면 ‘시간의 숨결’이 느껴지는 무언가—건물이든 작품이든, 음식이든—를 접할 일이 많은데, 이곳의 와인 재배 역시 그러한 것 같다. 포도 재배는 품종, 재배지역, 경작방식, 양조방식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에 걸쳐 쌓인 노하우가 총망라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작물이 무엇이든 '농사' 자체가 예술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점심을 먹고 셩피용(Champillon)을 지날 때까지는 풍경도 근사하고 좋았지만 이후부터의 이동은 순탄치 않았다. 에페흐네에서 랭스까지 가는 길은 대략 6~9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을 해두었는데, 중간중간 국도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지역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린벨트라는 의미일 뿐, 일대에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나는 D951 도로를 따라 걷다가 D71 도로로 접어들어 제흐멘느(Germaine)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셩피용까지는 포도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면, 언덕의 반대편인 제흐멘느 지역부터는 포도밭이 이따금 보일 뿐이다. 마을을 이루는 집들도 농가보다는 파리 근교에 사는 사람들처럼 신식으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트레킹에서 문제점은 제흐멘느를 지나면서부터 지도에 나타난 길들이 대체로 사유지에 속해 전혀 가로지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제흐멘느부터는 국도를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자크 라카리에르(Jacques Lacarrière)가 수필 『길을 걸으며』에서 이야기하던 고상하고 정겨운 프랑스의 트레킹은 있을 수가 없었다. 딱 한 번, 빌르 엉 셀브(Ville-en-Selve)라는 마을을 우회하고 뤼드(Ludes)로 향하는 길에 국도를 지나던 차가 나를 태워준 것이 뜻밖의 만남이라면 뜻밖의 만남이었다. 국도라고 해도 포장이 깔끔하지 않은데다 워낙 소도시들을 잇는 길이다보니 왕래하는 차도 거의 없었는데, 한 번은 나를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를 만난 것이다. 뤼드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마침 뤼드를 거쳐가는 길이라 해서 동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신기루 같은 일인지, 걸어서라면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를 차는 불과 4~5분만에 주파했다. 오고간 완성된 대화가 네다섯 번이나 됐을까. 통성명도 하지 못한 채 뤼드에서 하차했다. 운전자는 마이 셩파뉴(Mailly-Champagne)로 가는 길이라 했으니, 랭스로 가는 나와는 반대 방향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마나 보조석에 앉아 이동했던 시간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이 시간이 벌써 끝난 건가..) 한국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운전자의 말과 그의 좋은 인상만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사실 너무 경황 없이 차를 얻어 타다보니 운전자의 옆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운전자가 차로 함께 이동하겠냐고 차창 너머로 묻는 그 찰나의 순간에, 랭스까지 간다고 흥정하듯 말을 해야할지, 아니면 겸손하게 뤼드까지만이라도 태워달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주판을 튕기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 어쨌든 잠시 현대기술(차량 이동)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뤼드에서 코흐몽트훠이(Cormontreuil)까지 D9 도로를 따라 걷는 건 더욱 커다란 문제였다. 해가 길어졌다고는 해도 6시 55분이면 일몰시각이기 때문에 서둘러 걸을 필요가 있었지만, 국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는 오솔길로 우회해서 이동하다보니 좀처럼 시간을 단축할 수 없었다. 결국 코흐몽트훠이를 눈앞에 두고 사위가 너무 어두워져서 이젠 직접 나서서 히치하이킹을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 두려워졌다. 내가 먼 타지에 와서 괜한 객기를 부렸구나 하고,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한 원형교차로에 멈춰 서 있었다.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될 대로 되라 하고 국도를 따라 조금 더 나가다보니 망설이고 있던 게 한심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 시내의 인도가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도시로 들어왔으니 일단 안심이다.
이후에는 전족(纏足)이라도 한 것처럼 발의 통증을 느끼면서 항스 시내까지 진입하는 일만이 남았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랭스에서 파리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끊겼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아침에 셩파뉴 지방으로 넘어오면서 랭스에서 파리로 오는 막차 시간을 잘못 체크해둔 모양이었다. 랭스에서 하룻밤 묵는 것으로 일단은 생각을 하고 음산한 밤거리를 서둘러 걸었다. 11시 44분 에페흐네에서 하차해서 랭스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조금 안 되었다. 중간에 오트비예에서 레스토랑에 들른 걸 감안하더라도 8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은 셈이다.
중간에 도무지 더는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어 겅베타 가(R Gambetta)에 숙소를 얻을까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시내에 위치한 베슬르 가(R Vesle)까지는 조금 더 나가보기로 했다. 베슬르 가에 도착한 뒤에는 숙소를 정하기 전에 눈앞에 나타난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떼웠다. 그리고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좋은 게 이런 거구나(!!!), 참 좋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고민을 없애준다’는 점이다. 메뉴도, 양도, 질도,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먹든 프랑스에서 먹든 똑같은 식사가 나온다. 이날 밤 맥도날드는 내게 사막 한가운데 떠오른 한줌 신기루였다.
# Le Bon Moine. 내가 묵은 숙소의 이름이다. 여인숙에 가까운 숙소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데 0층은 식당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식당에서 투숙 업무를 처리한다. 밤 10시가 조금 안 되어서 도착하니 가게에는 부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할 일 없이 카운터 뒤에 앉아 있었고 아시아에서 온 방문객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9번 방을 받았는데 2층 건물 모퉁이에 위치한 방으로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늘 당일치기 일정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옷이나 양말, 세면도구 일체를 챙겨오지 않은 상태였다. 자정까지 여는 카르푸 익스프레스에서 간단한 세면도구를 산 뒤, 방으로 돌아와 평소 기숙사에서 볼 수 없는 TV를 조금 시청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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