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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의 일기: 반환점(point de retour)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7. 00:08
# 오후 여섯 시까지 학교 안 카페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여섯 시를 조금 넘겨 앙리 5세 고등학교 앞에서 75번 버스를 타고 마레지구 북단까지 나가 보았다. 중간에 공사중인 구간이 있어서 버스가 오텔 드빌 구간을 통과하지 못하고 퐁피두 센터 방향으로 크게 우회했다. 예고되지 않은 파업이나 공사, 경찰 배치는 따로 정보를 구하기가 막막해서 버스가 노선을 벗어날 때마다 아직도 당황스럽다. 정차하지 않는 정류소가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와도 우회 구간이 길어지면 버스가 멈춰설 때까지 마냥 넋놓고 있는 수밖에 없다.
텅플 광장에서 내린 다음, 비에이으 뒤 텅플르 가(R Vielle du Temple)를 따라 목적지도 없이 센 강까지 걸어내려 왔다. 이 길목은 기분 전환을 할 때 가장 자주 찾는 곳이다. 헤퓌블리크 광장에서 오텔 드빌까지 이어지는 길목. 오텔 드빌에 도착했을 때 시청 앞에는 우크라이나 반전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해가 길어져서 일곱 시 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낮처럼 밝다.
나는 시위에 모인 사람들보다는 오텔 드빌 위로 쨍하게 떠오른 엷은 무지개에 시선을 뺐겼다. 해가 저물 즈음 짧은 햇빛을 받아 공중에 수줍게 나타난 무지개. 2~3분쯤 짧은 시간 나타났다 사라져서 나를 빼고는 아무도 무지개가 나타난 걸 눈치챈 사람이 없는 듯했다. 시위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구호를 외치는 데 여념이 없고, 거리의 행인들도 분주하게 앞을 향해 걸을 뿐이다. 햇빛이 더욱 강렬해지자 무지개는 곧 자취를 감췄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갔다 나온 묘한 기분이다. 요새 내리 흐린 날씨였는데, 이 정도만이라도 맑으면 좋을 것 같다.
# 그대로 센 강을 가로질러 노트르담 성당 앞을 지나왔다. 곧장 팡테옹 방면으로 오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에콜 클럽 시네마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실패할 수 없는 상영시간표다. 나는 <캐롤>의 티켓을 구했다. 음악도 좋고 예쁜 영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보면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에 남아 있다가 영화관을 나왔다.# 날씨가 많이 흐리다. 며칠 전에 비해 날씨가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4월 날씨는 다시 겨울날씨로 복귀했다. 대신 낮은 무척 길어졌다. 여덟 시 반이 돼야 해가 떨어지고, 그런 뒤에도 아홉 시까지는 밝다. 이곳 사람들이 햇빛이 나면 밖으로 우르르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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