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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의 일기: 건축기행—파리 동부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17. 22:22
# 몸살 기운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아침에 하던 공부를 길게 하지 못하고 잠시 쉬었다. 기숙사에 누워서 쉬다가—여전히 창문 밖 날씨는 너무나도 좋았다—아무래도 더 몸이 가라앉는 것 같아 밖으로 나섰다. 햇볕도 쬘 겸 가볍게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이전에 파리에서 둘러볼 만한 현대 건축들을 저장해두었는데, 오늘은 팡테옹 지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13구로 나가보기로 했다. 27번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마히즈 바스티에(Maryse Bastié) 역으로 나갔다.
# 가장 먼저 찾은 건 듀오 타워(Tours DUO)다. 장 누벨(Jean Nouvel)에 의해 설계된 이 건축물은 학교를 빠져나와 클로드 베흐나흐 가(R Claude Bernard)를 오갈 때마다 항상 시선을 사로잡던 건물이다. 얼마전 검색을 하면서 파리 안에 장 누벨이 설계한 건축물들을 찾아보았는데, 이 듀오 타워가 그 중 하나였다. 파리에는 장 누벨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많은데 듀오 타워의 경우 2011년에 완공된 비교적 최근 건물이다.
듀오 타워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꺾인 형태의 실루엣이라 할 것이다. 멀리서 봐도 질서정연한 파리의 주택가 너머로 혼자서만 다소 위태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가까이서 가보면 칙칙한 느낌이 드는 르호이 메흘랑(Leroy Merlin)—오셩(Auchan)을 소유하고 있는 가족경영 기업이다—공장이나 13구의 주택가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듀오 타워의 유리 파사드로는 순환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빠르게 지나간다.
# 다음으로 간 곳은 미테랑 도서관이다. 프랑스의 국립 중앙 도서관이다. 사실 파리도 10구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치안이나 위생이 나빠진다고 생각했는데, 듀오 타워에서 미테랑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트램 철로를 사이에 두고 건물들이 매우 정갈하게 들어서 있었다. 시트로엥 공원을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파리는 서울보다 면적은 6분의 1로 작은데도 공간을 아낌없이 쓰는 것 같다. 미테랑 도서관은 서로 대칭을 이루는 네 개의 건물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아주 널따랗게 두고 있다. 대신 지하층으로 여러 시설을 만들어 놓아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도미니크 페호(Dominique Perrault)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1989년도에 완공되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다.
도서관 안의 광장을 한 바퀴 쭉 돌면서 놀랐던 풍경 중 하나는, 유리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 젊은 학생들 대부분이 K팝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 한쪽으로 라틴 음악에 맞춰 커플 댄스를 추는 일군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한국가요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춤 동작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싶었는데 가까이 가보면 한국어 가사가 흘러나오는 식이다. 신기해서 춤을 추고 있는 학생들에게 사진을 하나 남겨도 좋겠냐고 물었다. 다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두 친구는 한국가요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지는 않고, 스무스(Smooth)의 일종이라는데 정확히 어떤 장르인지는 모르겠다.
# 시몬느 드 보부아르 보행교를 건넌 뒤 센 강변을 따라 좀 걸었다. 햇살이 정말 따가운 시각이었다. 조금 걷다 보면 패션과 디자인의 도시(cite de la mode et du design)이라는 건물이 나온다. 제이콥+맥팔렌(Jakob+MacFarlane)은 원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재생시켰다. 사실 저 건물 아래로는 필로티가 촘촘히 박혀 있고 벽면마다 그래피티가 꽉 차 있어서 센 강에서도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은 구역이다. 어쨌든 이 노후된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공간을 재활용 할 수 있는 설계안을 공모에 부쳐 2010년 완성된 게 지금의 예술공간이다.
# 식재료를 사들고 기숙사로 돌아온 뒤 공용주방에서 잠시 옆방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막심(M)이라는 친구로 옆방이다보니 그 동안 얼굴이야 많이 마주쳤지만, 이야기를 나눌 일은 좀처럼 없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그 친구는 신기하게도 몇 마디 한국어를 정확하게 할 줄 알았다. 여기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는 동안 프랑스에서 알려진 경제학자들을 몇몇 이야기했는데, 어떤 경제학과 교수를 혹시 아느냐고 묻는다. 입학 전 구술시험에서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던 교수가 있었다면서 뭔가 신난듯 배시시 웃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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