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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의 일기: 파리 근교 여행 I. 베르사유(Versailles)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12. 14:33
# 오후에 잠시 베르사유에 다녀왔다. 베르사유에 가기 위해서는 RER C 노선을 타야 한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6월달 나비고 1개월권을 새로 끊었다. 학기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면서 귀국 일정을 새로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6월 동안 파리에 얼마나 체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리저리 재보다가 그냥 정기권을 끊는 편이 편할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두 시쯤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세 시간 쯤이면 베르사유 궁전을 충분히 둘러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날 네 시간 반을 돌아보았는데도 후반부였던 트리아농 구역은 급하게 다녔다.
# 베르사유 궁전 방문은 날짜를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보통 가장 추천하는 요일, 그러니까 사람이 가장 적은 요일은 수목요일이라고들 한다. 더 정확히는 아침 시간의 수목요일이다. 가장 피하라고 하는 요일은 화요일인데, 이날은 휴관에 들어가는 루브르 박물관을 대신해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방문객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화요일 시간표가 비교적 한가했음에도 붐비는 날짜를 피하려고 베르사유 궁전에 가는 걸 미루고 또 미뤘었다. 어쨌든 수요일에 오는 것까지는 맞췄는데, 오후에 도착해서인지 사람이 꽤 많았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 앞뒤 구역으로 사람들이 많아서 구경을 하는데 치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은 17세기 초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으로 지어지기 시작해서, 루이 14세의 치세 때에 확장・증설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애벌래가 날개 달린 나비로 커가는 것처럼, 중앙건물을 중심으로 착착 확장되어가는 베르 사유 궁전의 모습이 디오라마와 영상으로 잘 전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냥용 별장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성당, 의회, 오페라, 관료의 부속 건물 등 왕권을 극대화하는 온갖 장치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천명했던 루이 14세가 사실상 국가의 기능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옮겨오기는 했지만, 부르봉 왕가를 잇는 루이 15세, 16세에 이르러서는 섭정과 혁명으로 인해 베르사유 궁전은 그 역할과 기능에 부침을 겪는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두고도, 파리 시내의 튈르리 궁이며 루브르 궁이며 통치의 중심지가 왔다갔다 한 프랑스의 역사를 보면 참 신기하다. 거꾸로 말하면 17~18세기 이렇게 대규모 축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당시 프랑스의 국력이 엿보인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에 공화정이 들어서기 전까지 프랑스는 유럽 안에서도 일찍이 절대왕권이 확립되었던 곳이었다. 왕을 알현하기 위해 도착한 고위관료들과 정부관계자들을 위해 준비된 아파르트망들. 태양왕은 국가의 모든 일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그리고 관료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게끔 심혈을 기울였고, 심지어 왕권을 해에 비유하여 왕의 침실을 동향(東向)으로 두었을 정도였다. 자신을 해에 비유했던만큼 만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게 왕의 일과였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행해진 왕가의 일거수일투족은 귀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후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드 퐁파두르에 의해 프티 트리아농이 지어지고 차례차례 트리아농 구역이 확대되면서 베르사유 궁의 생활에 지친 왕족들의 휴식처가 마련되었다.
# 궁을 빠져나온 다음 베르사유 정원으로 내려온 다음 도팡 숲(Bosquet du Dauphin)과 오벨리스크 숲(Bosquet de l’Obélisque)을 차례로 지나면 트리아농 구역이 나온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트리아농 구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30~40분 걸리는 상당히 먼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베르사유 정원 일대도 더 천천히 둘러보고 햇빛도 쬈을 텐데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할애하면서 트리아농구역까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베르사유 정원 일대에는 넓은 경내를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한 전동카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쨌든 이어서 도착한 그랑 트리아농은 분홍색 석벽이 매우 인상적인 건물이다. 왕의 정부(情夫)들이 지어올린 휴식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약소하지 않다. 휴식의 기준이 뭔가 싶을 만큼 트리아농 건물들은 화려하다.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 무도회가 열리는 공간, 만찬을 즐겼던 공간 하나하나가 베르사유 궁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화려하다. 장인들이 만들었다는 각양각색의 고급스런 가구와 태피스트리로 각 방이 꽉꽉 차 있어서 예쁘기는 하지만, 참 호사스런 휴식을 취했구나 싶기도 하다.
트리아농 구역으로 들어오면서 관광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있을 때는 도슨트 군단이 이방 저 방을 차지하고 있어서 보고 싶은 것도 더 길게 보지 못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거나 하는 식이었는데, 트리아농 구역으로 들어오니 한결 구경하기가 수월하다. 트리아농 구역은 정원이 볼 만하다. 특히 프티 트리아농 옆 영국식 정원이 볼 만하다. 풀밭에는 나이를 오래 먹은 떡갈나무, 플라타너스 나무, 레바논 삼나무들이 높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다. 프랑스에서 보는 풍경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복잡한 도시 바로 옆에 녹지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영국식 정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로 여왕의 마을(Hameau de la reine)로 접어들게 된다.
# 여왕의 마을에 있는 호수 한가운데를 빙 둘러보다가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가방을베르사유 궁전의 보관함에 넣어두고 왔는데, 시간 관념 없이 궁전에서 너무 먼 지점까지 나왔다. 그런데 베르사유 궁전이 문을 닫기까지 10분 남은 상태에서 가방을 두고 온게 떠오른 것이다. 일단은 가방을 찾으러 다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땐 보관함이 비치되어 있던 건물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다행히입장 마감 이후 마무리를 하는 직원에게 부탁해 가방을 회수할 수 있었다. 직원이 닫혀 있는 문을 열기 위해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열쇠를 잘랑잘랑 꺼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여기가 정말 프랑스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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