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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의 일기: 루브르(Louvre)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18. 15:28
# 학기가 끝나고 몰아서 가고 있는 유명 관광지 중 남은 한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곳은 내가 다녀본 프랑스의 여러 관광지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예매를 해야 했던 곳이다. 전날 루브르 박물관에 무턱대고 갔다가 되돌아 왔던 기억이 있어서, 이날은 미리 오후 한 시에 입장 예약을 해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두 번 갈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세 가지 작품이라면,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고 모나리자—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그림 속 인물의 프랑스식 이름인 조콩드(Joconde)라고 부른다—를 꼽는다. 그 외에도 유명작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양이 워낙 방대하고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몇 가지 작품을 정해서 집중하는 게 좋다. 다만 루브르의 피라미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품들을 둘러보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특히 위 작품 중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모나리자는 드농 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드농관에는 유독 많은 인파가 몰렸고 드농 관을 둘러보는 일은 가히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드농 관 방면의 입구는 줄이 너무 길어서 나는 일단 쉴리 관을 통해 입장했다. (세 전시관이 결국 통로로 모두 연결 되어있다) 결론적으로 이날 4시간 반 정도 루브르에 있으면서 리슐리외 관은 사실상 전혀 둘러보지 못했다. 나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세 작품부터 끝내자(?)고 생각했다. 인파가 절정에 달하는 곳은 모나리자 앞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하고 많은 작품 중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만큼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곳은 없다.
역사상 수많은 여인의 초상화 가운데에서 모나리자가 이렇게 유명세를 얻게 된 건 1911년 도난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나도 이번 학기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알았다. 모나지라보다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스케일이 더 크고 화려한 초상화도 많은데 하필 그 중 모나리자만이 이토록 유명세를 얻고 있는 건, 20세기 초의 도난 사건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모나리자에 덧씌워진 아우라의 공이 크다고.
하여간 작품 하나를 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떠밀려 모나리자 앞에 간신히 도착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불쾌한 경험이라면 미술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다. 모나리자 앞에 몰려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작품 자체를 관람하거나 감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인증샷을 남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집단최면의 현장. 인증샷이 만족스럽게 나올 때까지 포즈를 잡고 찍고 또 찍는다. 옆에는 안내요원들이 앞으로 쏠리는 인파를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분명 극한직업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후에도 유명 작품 앞에서 시야를 가리며 집요하게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 때문에 진득하게 작품을 보기가 힘들었다.
루브르에는 사실 좋은 작품들이 그밖에도 정말 많다. 모나리자가 있는 전시실로 가는 길목에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명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어김없이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 반면, 홀의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에는 눈길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또 바로 옆 자크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파리가 날리는 수준이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드농관에 두 시간쯤 있었나 진이 빠진 나머지 사모트라케의 니케 앞 계단에 앉아 그만 나갈까 생각을 하다가 쉴리 관 2층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17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종교화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남은 시간은 드농 관을 벗어나 시간을 보냈다. 관람중에는 어제 에펠탑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청년을 루브르에서 다시 만났다. 전날 말하길, 4일 일정으로 파리에 머무른다고 했는데 아마도 파리의 유명 관광지를 쭉 둘러보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일 때문에 한국에 올 일이 있을 것 같다기에 연락처를 교환했다.
폐관시간인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루브르를 나섰다. 나는 지하통로로 연결된 1호선을 이용해 샤틀레에서 7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기숙사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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