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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의 일기 (上): 마르세유(Marseille) —비유 포흐(Vieux Port)로부터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31. 10:41
# 새벽 6시 파리 리옹 역에서 마르세유 행 열차가 출발했다. 새벽 6시에 발착하는 열차는 있지만, 기차역으로 바래다 줄 대중교통은 없다. 나는 기숙사에서부터 파리의 공용 자전거를 타고 리옹 역에 갔다. 리옹 역 앞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전거 회전율이 낮아서 자전거를 거치할 공간이 늘 부족하다. 오늘도 모든 거치대가 만차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자전거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간이 주차를 했는데, 거치가 완료됐다는 안내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아마도 기계 인식이 안 된 모양이라 짐작했다. 이미 열차 시각이 다 되어서 자전거 고정이 단단하게 되었는지 정도만 먼저 확인하고 일단 열차에 탑승했다. 새벽 열차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면서도 추가 이용시간에 대한 과금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저번과 달리 이번 경우는 자전거 거치에 대한 문의가 잘 마무리가 되었다.
# 마르세유에서 어디에 묵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학기 중 미리 여행 계획을 짰던 게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이라도 저렴할 때 숙소를 예약해두지 못했다. 그래도 경험적으로 여행 당일일지라도 한두 곳 정도 비는 곳이 생길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오판했던 부분이라면 지금이 바캉스 기간이기 때문에 많은 숙소들이 워낙 빠른 속도로 예약이 찬다는 사실이었다. 마르세유에 도착하고 보니 예약할 수 있는 숙소들은 맨 처음 알아보기 시작했던 때보다도 두 배 정도 비싼 가격에 나와 있었고, 빈 방은 기다려도 나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부킹닷컴, 구글링, 아고다 이것저것 돌려보다가 결국 느즈막한 오후가 되어서 처음에 확인해 두었던 것보다 높은 가격에 1박을 예약했다.
# 맨 처음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 마르세유에 길게 머무르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마르세유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은 인터넷에서 접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프랑스로 넘어올 때 마르세유를 남프랑스 여행의 베이스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프랑스 현지인들 몇 명이 마르세유를 둘러볼 만한 도시로 추천해 주었고, 무엇보다 남프랑스에서 교통 편의로 보자면 마르세유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마르세유 역에 도착했을 때 마르세유가 항구 도시이기 이전에 파리 못지 않게 번잡한 도시라는 걸 깨닫고 좀 더 조용한 도시에서 숙소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마르세유에서는 도착한 날 1박 이상의 일정은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마르세유에 대한 인상은 호불호가 매우 분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남프랑스는 볼 만한 소도시가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어서 차를 렌트하는 게 유리하다는 얘기를 들은 게 있어서, 혹시 몰라 국제운전면허증을 챙겨온 게 이번 여행배낭에 추가된 물건의 전부였다. 남프랑스로 넘어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바다였다. 처음에는 엑상프로방스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마르세유를 거쳐 내가 간 곳은 엑상프로방스도, 아비뇽도 아닌 꺄시스가 되었다. 실제 내가 탄 새벽 열차에서 절반 정도가 엑상프로방스 역에서 내렸던 걸 보면, 비즈니스로 마르세유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마르세유보다는 엑상프로방스를 남프랑스 여행지로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후 여행의 동선상 엑상프로방스와 아비뇽 지역으로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 마르세유는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불쾌하다 싶은 경험을 한 도시다. 그런 까닭에 내게 마르세유는 분명한 불호(不好)의 도시이기도 하다. 첫 번째 불쾌한 경험은 레스토랑에서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몇 십 분이 지나도 내게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든든히 먹어두기 위해 들어간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내가 직접 매대에 가서 주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나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의 테이블로 가 주문를 받는 것으로 보아 점점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주문이 기약 없이 밀리는 걸 기다려 보다가 결국 그 길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다행히 마찬가지로 비유 포흐의 북쪽에 면한 또 다른 레스토랑에서 무탈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 점심을 먹고 항구 동쪽에서 출발하는 꼬마 열차—도심의 안내센터에서 이 관광열차를 추천 받았다—를 타고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까지 올라갔다. 플라주 데 꺄탈렁(Plage des catalans), 포흐트 드 로히엉(Porte de l’orient) 등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오른편으로 이어진다. 열차는 뒤이어 경사를 따라 구불구불 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이윽고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가 나타난다.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는 마르세유 여행에서 일순위로 꼽히는 관광지로 마르세유의 전망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성당 내부는 일반적인 프랑스의 성당들과 달리 비잔틴 느낌이 나는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성당과 전망대를 다 둘러본 뒤에는 열차를 타고 올라오며 보았던 풍경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 마르세유는 부분부분 우리나라의 부산과 느낌이 비슷하다. 성당을 빠져나와 내려오는 길에 마주하는 골목골목은 부산의 초량동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비슷하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점에서나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파리의 분위기와 비교해서 보나 부산과 닮은 점이 많다. 한편 마르세유와 파리의 눈에 띄는 차이점으로 운전을 꼽을 수 있을 텐데, 마르세유의 운전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운전자가 보행자보다 길을 먼저 지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달까. 그래서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점멸 신호등이 마르세유에서는 2차선 도로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 남프랑스의 따가운 땡볕을 견디며 언덕을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상의를 벗은 남성 두 명을 길에서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얘 중국애잖아, F**k’ 하면서 지나간다. 화가 나 쳐다봤더니 ‘봉주흐’하고 능글맞게 웃어보이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처음으로 겪은 인종차별이었다. 잠시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전에 황당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프랑스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운 행색—휴양을 즐기러 온 하프팬츠 차림이었다—이었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6개월 프랑스 체류 중 처음 겪는 인종차별 표현은 정말 불쾌했다. 여기서 다시 나중에 만난 여행객들의 말을 빌리자면, 마르세유에서 소매치기나 추행 같은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어쨌든 언덕을 내려온 뒤에는 엉둠 섬(Île d'Endoume)이 보이는 자그마한 곶을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 파로 공원을 거쳐 비유 포흐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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