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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세유가 초행인 관광객이라도 마르세유라는 도시의 분위기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사뭇 다르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될 것이다. 마르세유 중앙역에서 마르세유의 중심가인 비유 포흐(Vieux port)를 가로지르는 라 꺄느비에흐(La Canebière)를 걷다보면, 같은 프랑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도시의 인적 구성 자체가 다르다. 행인의 절반 이상이 북아프리카나 서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로 보이고, 이는 메트로로 내려가 보아도 마찬가지다. 스카프를 두르고 길을 다니는 여성들도 많이 보인다. 마르세유가 프랑스 제2 대도시권역의 중심지다보니 식당이든 숙소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다는 걸 좋아하는 관광객도 있고, 마르세유의 수상쩍은 도시의 분위기와 치안 상황에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매력을 알기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 어쨌든 노트르담 드 갸흐드를 내려와 다시 비유 포흐로 되돌아온 뒤 뒤늦게 구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토요코인은 일본계 숙박시설답게 일본인으로 보이는 직원—언어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썼다—이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뷰가 좋은 방을 찾아 한 번 방을 옮기는 수고를 했다. 이른 아침의 긴 이동과 한낮에 있었던 몇 차례의 당혹스러웠던 사건들 때문에, 방에 짐을 풀고보니 맥이 풀렸다.
# 저녁에는 식사를 할 겸 르 파니에(Le panier) 구역으로 나왔다. 파니에는 마르세유의 원형이 되는 가장 오래된 도심이다. 내가 있는 숙소에서 르 파니에 중심으로 들어서려면 남서쪽 방면으로 마르세유 개선문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보도 위에는 수많은 지라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마르세유의 개선문은 파리의 그것에 비해 퇴락한 외양을 하고 있어서 한여름 밤임에도 퍽 스산한 느낌이었다. 얼마전 마르세유 출신인 HB가 마르세유에서 쓰레기 대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이 어땠을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미리 파니에에서 갈 만한 식당—항구 도시에 온 만큼 가급적 해산물을 파는 곳으로—을 확인해 두었다. 아쉽게도 내가 확인해둔 식당은 식사를 하려면 예약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보다 공간이 넓지 않은 곳이었다. 파니에 구역은 분위기가 오묘하고 독특하다. 비유를 하자면 서울의 성수동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허름한 골목을 따라 뜬금없이 정갈하게 테라스가 깔린 식당이 군데군데 나타나고, 영세한 구멍가게 옆에 콰르텟이 즉흥 연주를 하는 레스토랑이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가게라곤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모퉁이에 비건 식당이 입간판을 내걸고 있기도 하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다시 부둣가로 나오니, 낮 동안 맞은편에서 먼 실루엣으로 바라보았던 마르세유 대성당이 급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 조금 놀랐다.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와 마찬가지로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대성당 앞으로는, 극히 현대적인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이 어슷하게 비유 포흐(Vieux Port) 방면으로 해안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파리보다 위도가 낮은 마르세유의 해는 좀 더 이르게 떨어져서, 세 대의 작달막한 크레인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니 이제 막 해가 수평선을 넘어간 모양이었다. 해가 지기에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노을을 등지고 스케이드보딩을 즐기는 젊은이 몇 명이 활기차게 콘크리트 바닥에 마찰음을 냈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가장 긴 거리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기분을 내보고도 싶었지만, 결국 저녁을 먹기 위해 내가 간 곳은 비유 포흐 북쪽 뒷골목에 위치한 'French Hamburger'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의 햄버거 가게였다. 간이 테라스에서 주문한 햄버거를 받아 저녁을 먹는데, 바닷바람이 뒷골목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내 옆에는 부부가 다정하게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르세유의 해는 파리보다 일찍 떨어져도, 밤을 채우는 낮의 여운이 더 강렬했다. 이제는 비유 포흐 맞은 편으로 대성당 대신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가 눈에 들어왔고, 낮에 봤던 건물에는 퍽 촌스런 형광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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