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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의 일기 (下) : 지붕에서 지붕으로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14. 17:32
# 늦은 오후에는 잠시 오페라 지역을 들렀다가 에펠탑에 갔다. 파리에는 무료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들이 몇 곳 있다. 예를 들면 갤러리 라파예트가 그렇고 아랍문화원 옥상도 있다. 이날 오페라 지역에서는 프렝탕 백화점 테라스를 찾았다. 이전에 바로 옆 갤러리 라파예트에서 시내 전망을 본 적이 있어서 크게 경치가 다를 리도 없건만, 갤러리 라파예트에서는 출입구역 제한으로 볼 수 없었던 몽마르트 언덕을 프렝탕 백화점에서라면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다시 한 번 오페라 지역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프렝탕 백화점의 옥상은 갤러리 라파예트보다도 턱없이 협소했고, 옥상에서 아래층으로나 내려가야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경치를 감상하도록 되어 있어서 별 소득 없이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이날은 늘 팡테옹에서 뤽상부르 공원 너머로 바라보기만 하던 에펠탑을 직접 올라가보기로 했다. 보통 파리 여행에서 반드시 봐야 할(Must see) 코스 세 곳을 꼽자면 에펠탑, 루브르, 베르사유 궁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에펠탑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5구에서도 항상 보이는 건축물이어서, 그 동안은 딱히 에펠탑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에펠탑은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급감한 시기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던 곳이고 보안도 철저해서 쉽게 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장 예약을 하지 않고 저녁이 가까워져 찾아간 에펠탑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줄은 생각보다 금세 줄어들었다.
나는 에펠탑 2층까지는 계단을 통해 걸어서 올라가고 나머지 구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이용권을 택했다. 에펠탑 안에는 생각보다 이런저런 시설이 많다. 카페며, 레스토랑이며, 기념품샵이며, 꼭대기 층에는 샴페인을 파는 작은 가게도 있다. 이런저런 시설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데다 엘리베이터까지 설치가 되어 있고 방문객도 많다보니 겉보기에 우아한 이 철제 건축물이 어떻게 하중을 버티는 건지 궁금해졌다.
마침내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간 나는 샤이요 궁과 라데팡스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가느다랗기는 하지만 좀처럼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두꺼운 구름이 지평선과 간격을 두고 겹겹이 띠를 이루고 있었다.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그랬던 것처럼 석양을 보는 게 어쩐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과 부딪치며 서서히 빛을 잃어가던 태양은 구름을 가로지른 뒤 붉은 섬광이 되어 구름과 지평선 사이에 갇혔다. 이날의 태양은 지평선 뒤로 자취를 아예 감춘 뒤에도,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한동안 하늘에 현란한 잔영을 남겼다.
충분히 도시가 어두워지자 에펠탑은 파리라는 바다에 항로를 안내하는 등대처럼 허공에 빛을 쏘아올린다. 시커먼 바다 위에는 육중한 부표(浮標)처럼 몽파르나스 타워와 앙발리드, 사크레쾨르 성당, 개선문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밤의 센 강은 바다에 합류하는 민물처럼 어둠 속에서도 더 어둡게 파리를 휘감아든다. 그러고 보니, 에펠탑 아래에서 바라보았던 새하얀 광선은 분명 공중에 흩어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에펠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광선은 공중이 아닌 지평선에 그대로 내리꽂히니 이건 무슨 과학적 원리일까 싶다.
일몰시각이 저녁 아홉 시를 넘긴다는 점을 감안하고 저녁 일곱 시 반쯤 에펠탑에 왔었는데, 에펠탑이 문을 닫는 밤 열한 시가 되어서까지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에펠탑을 나섰을 때, 파리에 사는 사람들과 파리를 찾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제각각의 즐거움을 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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