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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울산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3. 1. 7. 19:10
2일차에 동해에서 포항이라는 긴 거리를 이동한 덕분에, 3일차는 비교적 여유를 갖고 일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포항의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더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7번 국도 여행을 완주한다는 데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날 부산까지 이동해보자고 생각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주에서 가보고 싶었던 여러 관광지들—특히 양동마을—을 생략해야만 했다. 한편 전날 같은 방에서 만난 C와 동행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서로의 계획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홀로 포항을 출발했다. 포항 시내를 빠져나오기 전 주유소에서 5만 원 어치 휘발유를 주입했다. 드물게 직원이 직접 주유를 해주는 곳이었다.
이날 경주 지역에서 둘러본 곳은 크게 두 곳으로 감은사지와 문무왕릉이다. 모두 국사책에서 사진으로나 보던 곳들로, 경주로 수학 여행을 왔을 때도 와본 적이 없는 곳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경주 지역에 들어온 김에 석굴암과 불국사, 첨성대, 왕릉 등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가본 적이 없는 경주의 유적을 방문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감은사지와 문무왕릉은 차로 채 5분 거리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책 안에서 보던 장소를 맨눈으로 보며 현장감을 느끼고 싶다는 바람을 빼면, 역사학적인 지식을 갖고 사찰 터를 이해할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감은사지 터에 눈에 띄는 것이라곤 석탑과 이 공간을 에워싼 대숲, 헐벗은 느티나무 한 그루 정도라 썰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히려 내 시선을 잡아 끌었던 것은 감은사(感恩寺)를 소개해 놓은 글귀였다. 682년(신문왕 2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감은사는 창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이후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다고 한다. 신라 석탑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곳 감은사지 삼층석탑, 그리고 1300여 년의 시간, 공백. 거대한 서사의 공백을 뛰어넘어 전달된 원형(原型).
뒤이어 도착한 문무왕릉은 한층 신기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정비되지 않은 해안가에는 문무왕릉에 대한 어떤 설명문도 찾을 수 없었는데, 그 대신 바다를 향해 무령(巫鈴)을 흔드는 나이든 무당과 그 뒤에서 연신 손을 싹싹 비는 어떤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잔해들이 어질러져 있었고, 갈매기들은 적당한 둔덕을 골라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몸집이 작은 갈매기가 있고, 그보다 몸집이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큰 갈매기가 있었지만, 이들을 다르게 지칭할 수 있는 조류학적인 지식이 내게는 없었다. 주차된 차로 돌아오는 길에, 모래 위에 앉아 문무왕릉을 향해 두 팔 벌려 무언가를 비는 또 다른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닷속 바위 무더기에 왕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서사는, 자연물과 신화를 결합시켜 사람들에게 토테미즘적 영감을 쉼없이 불어넣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울산으로 향했다. 출발 전 울산의 식당을 검색해보다가 울산에 언양 불고기가 있다는 걸 떠올렸지만, 결국은 울산에서 국밥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이후 태화강변 십리대숲 인근으로 이동해, 대나무를 모티브로 한 독특한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3일차의 일정도 어느덧 반환점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