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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서 포항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3. 1. 3. 22:45
월송정(越松亭) 또한 관동팔경의 하나로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는다면 양양의 동호 해변과 울진의 월송정을 꼽겠다. 이 둘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면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서 마음 놓고 경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인데, 내가 간 시점에 사람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동해안의 다른 명승지에 비해 관광지 조성이 덜 되어 있어서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동해를 만끽할 수 있는 곳들이기도 하다. 월송정(越松亭)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자에 올라서서 소나무 너머에 펼쳐진 푸른 바다는 퍽 이색적이다. 정자 앞으로 완만히 내리막을 이루는 사구(沙丘)에는 주민 두 명이 검정 깃털이 풍성한 시골닭을 풀어놓고 모래밭 위에 앉아 즐겁게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부구리를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그새 변덕을 부려, 월송정의 앞바다에는 여름에나 볼 법한 짙은 먹구름이 가득 깔렸다. 대기의 빛이 달라진 까닭에서인지 바닷빛도 변해서, 인디고의 바다에서 터키옥빛으로 탈바꿈한 다른 차원의 바다에 다다른 것 같았다.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새하얀 거품더미만이, 고성과 속초, 양양, 강릉, 삼척, 동해를 지나오며 바라본 것과 똑같은 꼴을 그리며 뭍의 가장자리를 허물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닷가를 벗어나 소나무숲을 산책한 뒤, 산책로 초입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테이크아웃했다. 기본적인 음료가 팔천 원부터 시작하는 고가의 카페였는데 운전중 지루함을 달래줄 요깃거리로 작은 투자를 하고, 이제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포항으로 이동하는 걸 목표로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해서 영일만을 가로지를 때에 선분홍빛 저녁놀을 오른편에 두며 차를 몰았고, 일몰 시각을 30분여 앞두고서는 호미곶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울진에서 잦아들었다고 느꼈던 바닷바람은 다시 급랭되어 있었다. 불꽃같던 노을은 맥없이 사위어서 해몰이 시각을 넘기면서 호미곶 일대는 빠르게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가까이에 구룡포 일대로 숙소를 알아보던 나는 숙박비를 아낄 겸 포항 시내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호미곶에서 포항 시내로 되돌아가는 길은 다시 40분 여가 걸린다. 포항아트센터 일대에는 게스트하우스 몇몇이 모여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체 게바라가 남미횡단에서 탔던 모터사이클의 모델명(Poderosa)을 이름으로 내걸고 실내 벽면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프린팅된 게스트하우스였다. 예약 없이 숙소를 찾은 나는 체크인을 하며 숙박비를 지불했는데, 짐을 정리한 뒤에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북엇국과 밑반찬, 햇반을 같이 먹겠냐고 물으셨다. 주변 식당을 찾아보기 번거로웠던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편의를 봐주신 것도 감사했지만, 식사가 든든해서도 감사했다. 사장님과 스태프와 마주보며 식사하는 동안, 사장님은 포항에서 가볼 만한 여러 관광지—구룡포의 일본인 마을, 영덕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등—를 소개해주셨다. 비수기여서 투숙객이 많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널널하게 방을 쓸 수 있었는데, 나보다 늦게 도착한 C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이윽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