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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양양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2. 12. 31. 13:36
무계획으로 온 여행에서 두 번째 날, 내가 정해놓은 막연한 목표는 울진이나 동해에서 일정을 마무리해보자는 것이었다. 전날 서울에서 고성까지 움직인 거리를 감안하면, 고성에서 울진 또는 동해까지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에 어떤 일정을 끼워넣느냐에 따라서 종착지가 달라질 것 같았다. 결국 이날 일정은 동해시에서 끝이 났는데, 그것도 가까스로 도착했다. 고성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두 번째 날은 마침 주말이었고 연말이 겹치면서 유명 관광지마다 생각보다 인파가 넘쳐났다. 사람이 많거나 정체가 심한 곳들을 피해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여하간 두 번째 날 나의 첫 번째 소소한 목표는 아침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바닷가에 접한 숙소 테라스에서 동해의 해가 또렷하게 보였다.
이날 첫 목적지는 고성의 청간정(淸澗亭)이었다. 동해안을 따라 늘어선 경치가 아름다운 정자, 누각, 포구, 해안가를 관동팔경이라 하는데, 청간정은 그 중 한 곳이다. 바다에 면한 청간정에서 시선을 돌려 내륙 방향을 바라보면 판도로(Pandoro)처럼 백설탕을 뒤집어쓴 듯 새하얀 설악산의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청간정은 석호(潟湖)와 해안에 접한 야트막한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석호에는 부유물이 뒤엉킨 얼음더미들 사이로 철새들이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얇은 띠처럼 가느다란 모래를 사이에 두고 파도 치는 바다가 펼쳐진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바다 위에서 거침없이 굵은 선을 그어내는 파도들은 여전히 육지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현란하게 갈라지는 물살은, 마치 오랜 옛날 주술사가 물로 현화(現化)된 천군만마를 풀어놓은 듯했다. 파도가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준마(駿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맹렬한 기세로 모래를 파고들며 질주해 온다. 그만큼 파도는 높고 거세었고, 저 멀리 마루가 높은 파도에서는 거칠게 부서진 물방울들이 햇빛을 튕기면서 시시각각 무지개를 그렸다.
속초나 양양 즈음에서 바닷가를 보며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시내에 진입하니 관광지로 몰려드는 차가 많아 이동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특히 식당가가 밀집한 포구 일대는 주차 공간이 없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결국은 동명항에서 차를 돌린 뒤 양양 시내까지도 그대로 통과하여 인적이 적은 설악항 일대에서 점심 먹을 만한 곳을 발견했다. 서울에서라면 같은 가격에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좋은 생선구이와 백반이었다. 동시에 종착지로 동해와 울진으로 염두에 두었던 이날의 계획 치고는 더딘 출발이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