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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부산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3. 1. 8. 11:27
평일 낮 공영주차장에는 거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고, 십리대숲에 들어선 뒤로도 한적하게 거닐 수 있었다. 살을 에일 듯 매서웠던 고성의 추위를 떠올려보면 울산의 날씨는 더없이 푹했다. 하지만 대숲 안으로 들어서니 다시 기온이 내려가서 손끝이 시려온다고 느낄 정도였다. 십리대숲이라는 말 그대로 이곳은 태화강변을 따라 4km에 걸쳐 펼쳐진 거대한 대숲이다. 원래는 이곳의 일부만을 산책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더 걸어야지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십리대숲의 출발지점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십리대밭교에 도착해 있었다. 대숲 안의 한기를 떨쳐내고 싶었던 나는 되돌아오는 길에는 태화강변으로 나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걸었다.
이곳 십리대숲에 대한 언급은 18세기 중반의 어느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강의 범람을 방지할 목적으로 대나무숲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에 여행했던 커다란 대숲—담양의 죽녹원과 교토의 아라시야마—들과 비교해보아도 십리대숲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해가 저물어가는 태화강변 맞은 편으로도 대숲이 무성하고, 산책로를 향해 비스듬히 늘어진 일군의 대나무들은 그 농밀한 햇살을 튕겨내며 저 멀리까지 깊은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이날 나의 마지막 일정은 해동 용궁사(海東 龍宮寺)에서 끝났다. 부산은 이번이 여섯 번째 여행이지만 항상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데, 뚜벅이 여행으로는 부산 시내로부터 이동하기 어려운 해동 용궁사를 찾게 되었다. 저녁을 앞둔 시각 동해의 색깔은 빛이 바래 있었고, 해안가에서 가장 가까운 몇몇 돌탑만이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다. 지장보살이 위치한 방생터를 먼저 들른 뒤 나는 오랜 시간 관음대불(觀音大佛)이 동해를 내려다보는 사찰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산 속에서나 보던 사찰이 파도가 코앞에 닿는 해안가에 자리한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이후 나는 다시 한 번 게스트하우스 형태의 숙박을 찾아 서면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부산 시내를 이동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곳곳에 산이 많은 부산의 특성상 고가도로가 많고 로터리도 신호체계가 복잡해서 네이게이션을 확인하면서 가는데도 진입로와 출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서면의 숙소에 도착하는 과정에서도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그래도 기장군에서 부산 시내로 넘어오는 길에 광안대교 위를 달릴 때는 운전하는 여행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서면 중심가에서 살짝 빗겨난 곳에 위치한 숙소에 어렵사리 주차를 한 뒤, 저녁을 먹으려고 서면 시장 방면으로 나왔다. 혼자 하는 여행이다보니 가장 만만한 국밥을 많이 먹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시장 일대에 늘어선 돼지국밥집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70년대 서울지하철에서 쓸 법한 낡은 폰트가 그대로 남아 있는 노점들, 국밥집 안에서 음식을 나르는 히잡을 쓴 젊은 이국 여성, 한 블록만 지나면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포토부스들까지 상당히 혼종적인 느낌이다. 이후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포동 카페거리까지 밤산책이 하고 싶어 젊은이들의 쾌활한 음성이 빌딩을 타고 울려퍼지는 번화가를 벗어나, 한밤 형광빛을 내뿜는 황령산 봉수대를 부표 삼아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