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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대전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3. 1. 15. 11:38
정오를 넘겨 부산을 출발했다. 서울로 가는 먼 여정에서 나는 두 번 휴식을 취했다. 한 번은 의성 휴게소에서 정차했고 다른 한 번은 대전을 경유하며 잠시 유성구의 한 동네에 들렀다. 고성에서 부산에 이르는 거리를 4박 5일만에 주파하다보니 피로감도 몰려왔던 데다, 이날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일정에 맞춰 서울에 도착하려면 길을 서두를 필요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를 달리고 오후 퇴근 시간대가 가까워질수록 예상도착시간은 점점 더 뒤로 밀렸다. 결국은 저녁 일정은 어느 정도 체념한 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대전에서 3년간 머물면서 시간을 보낸 곳은 여러 군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구단지 네거리가 있는 작은 동네에 대한 기억이 가장 크다. 두세 시간 남짓 대전을 찾으면서 이번에 들른 곳 또한 이곳이다. 잠시 카페인을 충전할 만한 곳을 휴대폰으로 검색하다가 '리브리스'라는 이름의 카페를 발견했는데, 2013~14년경 같은 동네에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었던 카페가 생각나 즉흥적으로 찾아가보았다. 고급 가구점이 몰려 있는 곳에 위치한 카페로 비교적 최근에 오픈한 듯했는데,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10년 전에 찾았던 '리브리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실내가 꾸며져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직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그 리브리스'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고, 대답하는 얼굴에는 이런 내 질문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한 익숙함이 묻어났다.
에스프레소 콘파나를 하나 시켜 놓고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취급하는 책들(libris)이라 함은 문학이나 철학 서적이 아닌 assouline이라는 프랑스 출판사에서 만든 예술서적들이었다. 서가 사이로는 우아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10년 전 리브리스에서는 푸근한 활자의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면, 전혀 다른 아이덴티티를 표방하는 이곳에서 책은 주로 방문객들의 미적 욕구와 허영을 채우는 데 쓰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대전을 찾은 까닭은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절 1~2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찾았던 베트남 쌀국수 집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아마도 사장님은 날 알아보실 일이 없겠지만, 나는 나름 이곳의 단골이었고 얼큰하고 매운 베트남 쌀국수는 스트레스를 날려 주었다. 그렇게 짧은 대전 방문을 마치며, 한 차례 더 주유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