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동안 풀렸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면서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내 안에서 굴러가던 시계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잠시 멈춰버린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주말을 껴서 부산과 포항으로 한 차례 출장을 다녀왔고, 마침 출장 전날밤 집에 난방이 작동하지 않은 까닭으로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출장에서의 일정은 얼마나 빠듯했던지, 내가 여행하기 좋아했던 부산을 조금이라도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출장을 간 날은 더군다나 미세먼지가 자욱히 가라앉은 날이었고, 광안대교 위를 지나며 바라본 부산 해안가에는 몇 년사이 해안을 끼고 초고층 아파트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직선으로만 완성된 획일적인 건물들을 보며, 어쩐지 이 도시가 싫어질 것 같았다.
잃어버린 일상의 방향감각을 되찾고자 근래에는 독립출판사에서 사진집을 하나 주문했다.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Daegu était un grand étang)>. 용흥못에서 받은 인상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온 뒤 대구의 연못에 대해 알아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대구의 못에 관련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나와 똑같은 물음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히게 반가웠다. 그렇게 해서 며칠 뒤 받아본 책은 촬영일지가 국문과 프랑스어문으로 번갈아 적혀 있어 더욱 내 취향을 파고들었다.
사진집 속 과거의 못을 매립해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물과 사물들―인물 사진은 없다―의 인상은 어떤 면에서 내가 출장중 부산에서 발견한 예리한 직선과 같은 것이었다. 원래 존재하던 것을 밀쳐내고 들어앉은 생활공간의 멀쩡스러움, 그 위에 켜켜이 낀 세파의 질감. 사진들 속 부조화스런 피사체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풍경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분명 눈앞의 풍경이었다. 이미지는 때로 텍스트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이미지 너머에서 우리가 도외시해온 서사를 발견한 것 같았다. 파괴와 생성의 집요한 길항작용, 그 경로를 거쳐왔을 수많은 사람들의 숱한 희로애락. 못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이상 못이 존재하지 않지만, 못이 아닌 것들이 정돈되지 않은 서사 위에 들어서 있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장소인 도동서원은 그런 얼룩덜룩한 서사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었고, 그 이유는 도동서원의 누각에서 바라다보이는 낙동강 물줄기와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어 가는 산등성이만큼은 서사의 속박으로부터 일체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해질녘 어둠이 스며드는 서원 안에서, 지붕과 가까운 곳이 하얗게 칠해진 중정당의 기둥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배움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에 단청을 대신해 칠해진 하양은 내게 불현듯 병적인 인상을 불어넣는다. 그 빛깔은 참 쓸쓸하고 파리하다. 마지막으로 순백을 집어삼키려는 밤의 숨결 앞에 모든 서사와 그 안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