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엄마를 모시고 이천 산수유 축제에 다녀왔다. 일찍이 답사 차 이 지역을 들르면서 알게 된 행사로, 수도권에서는 가장 먼저 열리는 꽃축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수유(山茱萸)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나 자투리 공원에서 곧잘 보이곤 하지만, 봄의 대명사 벚꽃에 밀려 그 수수함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나무다. 개나리의 노랑, 올리브의 초록, 레몬의 노랑이 절묘하게 배합된 산수유꽃이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헤아리기 어려운 색을 발하고 있었다.
사실 이날 산수유꽃의 색깔은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가로수길에는 행락객이 여념 없이 봄기운을 찾아 사진을 남기고 있었고, 길 옆 가판에는 버섯이며 들기름이며 장날처럼 물건을 팔러 나온 지역민들이 분주히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오를 넘긴 햇빛은 화사했고, 그 아래를 누비는 사람들은 마치 각자의 역할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행락객은 아직 봄의 온화함에 익숙하지 않았고, 본업이 따로 있을 지역민들은 몸에 배지 않는 장사에 애써 골몰하고 있었다. 즐비한 산수유 나무도 원래는 지역민들에게나 눈요깃거리였을 것을, 이제는 외지인까지 맞아들이자니 어색해 보였다.
꽃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도요촌(陶窯村)을 잠시 들러 사기 그릇들을 구경했다. 늦은 일요일 오후는 대체로 상점을 닫았거나 닫기 위한 준비로 한산했고, 우리는 분청사기를 만드는 한 가게에서 오랫동안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 입장한 손님이 거북하지도 않은 듯, 가게를 지키던 초로의 아주머니는 접시와 찻잔을 부담스러울 만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을 달아준다. 나와 엄마는 당장에 필요하지도 않을 법한 고급 도자기들을 들여다보면서 한참을 머뭇거렸고, 그런 엄마를 위해 안쪽에 금박을 입힌 커피잔을 사드렸다.
'주제 없는 글 > 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리재로부터 (0) 2024.05.13 돈화문으로부터 (0) 2024.05.12 만추(晩秋)의 내장(內藏) (0) 2023.11.13 경주(慶州), 흐린 (0) 2023.10.14 전나무숲과 안반데기 (0) 202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