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눈은 내장산에서 맞이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이번 주말 단풍을 구경하러 정읍에 다녀왔다. 갑자기 초겨울 날씨가 된 이번 주 전까지만 해도 11월 날씨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고, 서울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새파란 은행나무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막연히 내장산에 단풍나무도 꽤나 남아 있겠거니 생각했더랬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내장산에서 날 맞이한 건 싸락눈이었으니..
단풍지도를 확인했던 건 9월말경, 단풍시즌에 맞춰 한창 촬영시점을 조율하던 때였다. 단풍지도에 따르면 내장산은 11월 6일에 절정을 맞이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내장산보다 한참 남쪽에 자리한 한라산은 내장산보다도 더 빠르게 단풍이 찾아올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위도차보다도 산의 고저와 인근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여하간 단풍 구경을 놓치게 생겼을 때 가장 늦게까지 단풍이 남아 있는 곳은 어디일까 훑어보다가 한라산의 단풍시기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쪽에 자리한 내장산은 단풍철이 늦게 오는 편이었음에도 내가 갔을 때 단풍은 8할이 낙엽진 뒤였다.
꾸물대는 아침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사에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택스나 버스를 탈 땐 그렇지 않지만,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는 멀리 이동하는 만큼 저절로 여행자의 기분이 된다.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감에 따라 서울역사의 지붕을 떠받치는 새하얀 철골 구조가 하나둘 그 시원한 직선을 펼쳐 보인다. 내가 탄 열차는 크게 두 량으로 나뉘어 익산역에서 하나는 목포 방면으로, 다른 하나는 여수 방면으로 분기(分岐)할 것이다.
정읍역 앞에서 171번 버스를 타고 내장산 입구로 들어가는 길 아직까지 단풍을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한 기대는 관광안내센터에서 단풍이 거의 다 떨어졌다는 안내를 들은 후 내려놓았고, 대신에 조금 다른 등산 루트를 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장사를 먼저 들르는 대신에 벽련암(碧蓮蓭) 방면을 먼저 올랐다. 가는 길목마다 불그스름한 단풍나무들이 있었는데, 대개는 색을 잃은 것들이었지만 더러 잔불처럼 불씨를 품은 듯한 단풍나무들도 있었다.
이날 등산에서는 벽련암에서 서래봉까지 오르는 코스가 가장 힘들었다. 관광안내센터의 직원은 내장산에 크게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했는데, 서래봉을 오르기 시작할 때는 봉우리 한두 곳을 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벽련암에서 경치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할 걸, 단풍구경도 쉽지 않은 상황에 괜한 발걸음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고도에에서 붉은 빛을 발하던 단풍나무들도 어느샌가 사라지고, 인적도 드문 산길을 납작 뒤덮은 건 새파란 이대들이다. 꼬마 대나무처럼 생긴 이대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처럼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어수선히 낙엽이 쌓인 바위 위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딱정벌레에서 다시 한번 한여름의 생명력을 발견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간다고 한 것이 이날 결국은 신선봉까지 둘러보았다. 단풍구경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무상무념 속에서 몇 가지 잡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내려갔다.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에 대해 자책하거나 최근 곱씹었던 감정들을 들여다보다가, 마주 걸어오는 등산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어서 다른 생각으로 건너뛴다. 내장(內臟). 이곳의 지명은 참 독특하다. 700미터라는 높이에 비해 어쩐지 거창한 이름 같기도 하다. 사람의 오장육부를 가리키는 단어와도 똑같다. 아홉 봉우리로 에워싸인 이 산은 무엇을 품고 있다는 것일까. 불현듯 로베르토 볼라뇨의 내장 사실주의에 대한 생각이 난다.
서래봉에 이어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을 끝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이미 서래봉에 오를 때쯤부터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까치봉을 올라설 때쯤에는 진눈깨비도 아니고 가랑비도 아닌 것이 땅을 적시지 못할만큼만 공중에 흩날렸다. 오후 네 시부터 일대에 비 예보가 있었다는 등산객의 전언인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신선봉까지 찍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내장산의 봉우리는 말발굽처럼 둘러싼 형상을 하고 있어서 각 봉우리마다 경치가 다르다. 맑은 날에는 서해가 바라보인다는 망해봉(望海峰), 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는 연지봉(蓮池峰), 에피소드도 저마다 다르다.
신선봉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길고도 지루한 돌계단의 연속이었다. 하산은 홀가분하게 하기 마련이건만 구불구불한 급경사가 끝도 없이 이어지니 점점 지치기만 했다. 금선폭포를 지나고서부터야 이내 길은 평탄해지고, 그 길로 내장사로 이어졌다. 내장사는 대웅전을 짓기 전의 퍽 허한 풍경이어서, 암자인 벽련암을 먼저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부슬비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황망히 천 원짜리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아직 비가 내린다고 할 만큼 물기가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나는 제2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되돌아 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야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음을 실감한다. 이 한기는 너무나 은근해서 내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이에 뼈의 한가운데까지 파고든 것 같았다. 이날 점심도 거른 채 등산을 했는데도 허기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가, 한기를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정읍역 앞에서 뼈해장국을 하나 먹었다. 반찬을 고르게 담는 굼뜬 시아버지 옆에서 올이 해진 카디건을 입은 며느리가 혼자서 음식을 분주하게 나른다. 주방 안쪽을 들여다보면 할머니가 굽은 등으로 화로 위 뚝배기들을 질서정연하게 가열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지 참 고단하다. 그들도 고단하고 나 역시 고단하다. 겉이 다를 뿐 누구나가 고단하다. 식당을 나오고서도 갑자기 허기를 느낀 나는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가득 사들고 역으로 들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