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나서 만리재 고갯길을 내려가며 불현듯 평소에는 가보지 않던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때마침 카메라가 있는 날이었다. 하늘은 창창하고 봄바람은 산뜻하다. 그리고 서울로에 올라서면서 눅진한 여름 공기를 예감한다. 이름조차 생소하고 모양새조차 서울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아담한 나무들이 좌우 번갈아가며 산책로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푸른 오솔길(Coulée verte). 서울로 7017의 모티브가 된 파리의 쿨레 베르트(Coulée verte)를 산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만리재 고개에서 흘러내려오는 옛 고가도로는 경사를 오르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어느새 서울역이 발아래 보이는 높이로 나를 이끈다. 나는 한글로 된 나무의 이름과 학명(學名)을 대조해가면서, 우리말로 풀이된 이름과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얼마나 닮았는지 헤아려본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무들은 줄곧 쓸쓸해 보였다. 원래의 고향과 원래의 군락에서 떨어져 한 그루씩 콘크리트 화분에 식재되어 있는 모습이 어딘가 처량하다. 왜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하필 꼭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 것일까. 가지 끝끝마다 터진 화사한 봄꽃을 보면서 우악스레 발악하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을 가두고 있는 고립된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산책로가 끝나가는 반대편 지점에서는 놀랍게도 남산 중턱에 돌로 지어진 오래된 교회 건물을 발견했다. 빽빽한 고층 빌딩의 그늘에 가려 석조 건물이 잘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고가도로 아래 평지를 걸을 때는 비탈 위에 자리잡은 교회당 건물이 보일 리 없다. 갑갑한 풍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지으려는 육중한 돌더미들이 시간의 영락(零落)을 암시하며 다가온 계절을 거스른다. 나는 원래도 늘 그자리에 놓여 있었을 잿빛 교회당을 사진으로 담으며 눈앞에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