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날짜가 많은 5월, 하루 더 휴가를 보태어 푹 쉬기로 했다. 이런 때 어디 길게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좋으련만 여행 준비를 위해 떨어야 하는 부지런함마저 부담스런 요즈음이다. 사실 5월에 장기휴가를 써서 가족휴가를 가려고 작년부터 계획을 해오긴 했었다. 해가 바뀌면서 생각지 않은 새로운 업무들이 할당되었고, 나름대로 그 업무에 몰입하게 되어 자연스레 휴가 계획을 접게 되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편히 쉬는 것보다 일하는 편이 낫다.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도 무념무상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독서라든가, 어학공부라든가 꼭 무언가를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은 일이라기보다는 휴식으로 여겨져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휴식이라고 하기에는 적잖이 집중과 끈기를 요하는 일이니, 워라밸이 강조되는 요즈음이라지만 직장 안에서의 삶이든 직장 밖에서의 삶이든 수고로움을 피할 길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찾는 양평의 북한강변에는 개망초와 애기똥풀, 토끼풀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고, 그늘진 곳마다 오디가 시퍼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름을 아는 풀들이지만, 기억 속 깊은 구석에 관념으로 남아 있을 뿐 언젠가부터 내 시야에서 사라진 풀들이다. 형형히 나부끼는 초여름의 나무들, 그 나뭇가지 끝에 가냘프게 생을 터뜨린 잎사귀,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샛노랗게 익어버린 수풀들, 쉼없이 햇빛을 밀어내는 강의 찰랑임, 바람에 실려오는 눅진한 풀내음, 내 시선을 어루만지는 유백색의 구름들, 나는 수고스런 세상을 떠나 오늘 하루 한가히 해찰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