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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힐로(Hilo)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 11:40
8월 힐로의 날씨는 고요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하와이 행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월에 갔어야 할 여행이었지만 회사에서 예정에 없던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예매해 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게 되었다. 1년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무렵에 예약해 놓은 티켓이었다.
하와이로 출국하는 당일에는 우리나라에 태풍이 올라왔다. 기상 상황이 불안정해서 비행편의 이륙시간이 두어 차례 순연되었다. 인천에서의 이륙이 늦어지면서 덩달아 하와이 안에서 한 번 더 이동하는 국내선 비행편으로의 환승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일찍부터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되지 않은 상황은 끼어들기 마련이다. 국제선 티켓과 국내선 티켓을 각각 따로 발권한 터라, 국제선 도착이 늦어진다 해서 현지에서의 국내선 출발이 조정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걸 천재지변이라면 천재지변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비행기에 올라탄 이후에도 지체가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길어지자,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급한 대로 하와이안 항공 본사 고객센터에 연락을 했다. 국내 고객센터는 운영하지 않는 저녁 시간이었다. 수화기 너머 인도 억양이 짙게 밴 상담원의 영어가 들려온다. 아마도 그녀는 저렴한 인건비로 고용되어 인도에 거주하면서 미국기업의 업무를 원격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리라.
다행히 그녀는 호놀룰루에서 힐로로 들어가는 비행편을 다음 차례로 변경해주었다. 수수료는 없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접어들고 이제는 이륙을 위해 엔진을 가열하는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힐로는 내가 계획표 상에 빼곡히 묘사해 놨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차를 렌트해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마치 이번 여행이 벌써 종료된 느낌이었다.
힐로 북부에 자리한 우리의 숙소 앞으로는 두 그루의 야자수가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 무성한 잎사귀로 태평양의 수평선 한 켠을 가리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는 두꺼운 구름띠가 새하얀 것이 하나, 먹빛을 띠는 것이 하나로 마치 두 개의 바다가 두 개의 수평선을 그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안도(安堵) 외의 것은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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