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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일상/film 2016. 12. 2. 17:07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다큐멘터리/마뇰 드 올리베이라/마뇰 드 올리베이라, 디오고 도리아, 테레사 마드루가/68>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주최하는 포르투갈 영화제에 다녀왔다. 아마 몇 년전에는 포르투갈'어' 영화제라고 해서 마찬가지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주최했었는데, 그때는 <바이바이 브라질>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이번 영화제의 추천작이기도 해서 이 작품을 보기는 했지만, 사실 이 감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더군다나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이니 감독에 대해 적당한 배경지식은 있어야 할 텐데, 잘 모르면서도 무턱대고 봤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임권택' 감독에 비유할 수 있는 포르투갈의 거장인 듯 하다. 비교적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부담없이 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Hollywood Reporter>에서 나온 리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매매에 부친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오래된 주택을 구경하러 온 두 부부의 대화를 통해 영화는 진행된다. 부부는 어둠이 내려앉은 주택의 정원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두 부부의 목소리뿐이다. 더러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나와 집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 또는 이 집에서 보낸 일생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음...두 부부의 대화 속에서 마음에 드는 대사가 많았는데, 나중에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심지어 포르투갈어로 검색을 해봤는데도) 관련한 대사가 검색되지 않았다. 좀 아쉬웠지만, 어찌 됐든 영화를 관람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집'의 의미"와 "감독이 경험한 포르투갈 사회의 변화"
먼저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집은 '배'로 묘사되곤 한다. 테라스가 뱃머리로 묘사되는가 하면, 집의 기둥들은 배를 지탱해주는 기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창은 바깥을 향해 시원하게 뚫려 있고, 통로는 갑판 아래의 복도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집'을 '배'에 비유하는 것은 우선 포르투갈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개척해온 감독 자신의 '도전정신'을 의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이 영화가 그의 첫 작품이다보니 그의 걸작을 나열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또 한 가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배'는 '포르투갈'을 의미하기도 한다. 포르투갈은 유럽국가 가운데 대서양에 가장 가깝고,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일찍부터 항로를 개척한 나라다. 바스톨로뮤 디아스에서 바스코 다 가마에 이르기까지, 포르투갈은 그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항로개척의 최첨단에 서 있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영화에 담고자 한 '포르투갈적 정체성'이 결국은 '배'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집이 자리 잡은 위치에서 더욱 확신을 준다. 그의 집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테라스 너머로는 '숲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야말로 미지의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배의 형상이다.
두 번째 관점("포르투갈 사회의 변화상")에서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두 번의 고비를 겪는다. 먼저 살라자르의 독재(1926년 수립된 제2공화국의 수장으로 집권하는 동안 높은 경제성장을 견인하였다)하에서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아니키-보보>라는 영화를 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그는 감옥신세를 지게 된다. 정부의 보조금이 끊긴 것은 물론이다.
살라자르의 오랜 독재가 붕괴하고 1974년 마침내 포르투갈에 민주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다시 한 번 시련을 겪는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공장이 노동자들의 점거와 파괴로 더 이상 쓸 수 없는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과거의 유산은 철저히 파괴해버리겠다는 듯, 민중들은 그로부터 재산을 앗아가버렸다. 그가 일평생을 함께 해온 집을 내놓은 이유다. 더군다나 영화는 제작된 당시(1982)에는 발표되지 않았다가, 그를 기념하여 2015년에야 비로소 공개되었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에세이는 가족들과 함께 했던 행복했던 시간과 맞물려 전개된다. 무척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비록 생소한 포르투갈이기는 해도 그가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저런 아늑한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튼 여러모로 배워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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