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식 교육법(?!)일상/film 2016. 12. 5. 17:05
<캡틴 판타스틱/드라마/맷 로스/벤(비고 모텐슨), 보(조지 맥케이) 외/119>
영화의 출발은 워싱턴 주의 깊은 숲속이다. 올해 초 미국 북서부를 여행해서 그런지, 국립공원을 들른 적도 없는데 괜히 반가웠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기존관념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다.
'벤-레슬리' 부부는 아이들을 이른바 철인왕(Philosopher King)으로 만들기 위해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가족은 외부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숲으로 들어간다. 대학입학을 앞둔 장남 '보'부터 아직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되어 보임직한 '나이'에 이르는 6 남매가 읽는 책도 특이하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미들마치>, <우주의 구조> 등등. 또한 M 이론, 마르크스주의, 권리장전 등 폭넓은 지식을 깊이 있게 공부한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서 이런 소재가 다뤄진다는 게 신선했다.)
이뿐 아니다. 암벽등반, 무술, 사냥 등 생존과 육체단련을 위한 운동까지 병행하는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홈스쿨링이다.
일견 급진적인 '벤'의 홈스쿨링은 오래전부터 주변과 마찰을 일으켜 왔다. 그의 형제, 장인어른 모두 그를 경멸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람은 말이 아닌 행위에 의해 정의된다."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표현이다. '벤'은 <롤리타>를 읽고 있는 딸 '베스퍼'에게 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책에서 다뤄진 '사실'을 늘어놓는 딸에게 '자기 생각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벤'이 양육한 6남매는 실제로 똑똑하다. 장남인 '보'는 아이비리그에 원서를 넣는 족족 합격원서를 받았고, 막내딸 '나이'는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은 사촌들과 '권리장전'에 대한 논의에서 훨씬 뛰어난 의견을 펼친다. 형제들과 친정식구들이 '비정상'이라고 간주한 교육방식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소위 '정상'적인 교육시스템 안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이들 장면은, 우리가 고수해온 기존의 '가르침'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도 뜨끔했다. 오지선다형 문제에 최적화된 공부만 해온 나도 '권리장전'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알기는 하지만, '나이'처럼 '권리장전의 역사적 의의, 그리고 개인적 의견'에 대해서까지는 연결짓지 못할 것 같다. 꼭 '권리장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공부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가 '자본주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표현 면에서, 마르크스주의,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노엄 촘스키 등 자본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과 사상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을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직접적으로는, '벤 일가'가 워싱턴 주의 숲 속을 나와 장인어른의 집이 있는 뉴멕시코로 향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바깥세상을 마주할 때 보인 반응으로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을 확인할 수 있다. 각종 첨가제가 가미된 인공식품들, 공간을 비경제적으로 활용하는 거대한 주택을 보며 벤과 그의 6남매는 그들을 비웃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둘째,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6남매는 누군가(너무 스포일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가 좀 그렇다..)의 뜻밖의 죽음에 대해 '벤'과 6남매는 분명 상실감을 느끼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즐겁게 떠나보내는 일' 역시 이들의 미션이다. 알록달록한 복장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습, 시신을 화장하는 동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끝으로 그렇게 얻은 뼛가루를 변기에 흘려보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보는 사람도 좀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의 숲속 연주에서 변주(變奏)를 이끌었던 둘째 아들 '렐'은 끝내 아버지 '벤'과 반목을 일으킨다. 그의 교육방식에 불만을 품고, 그가 만들어 놓은 숲속 캠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를 경멸하는 장인 역시 그의 양육권을 박탈하여 손자들을 '지키고자' 한다. 결국 이 모든 시도는 무산되고 말지만, 그가 추구했던 플라톤의 이상국가 건설이 현실세계에서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이런교육을 통해 '철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벤'의 6남배는 분명 제각각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만, 분명 사회와 섞일 수 있는 무엇인가를 결여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결국 아들 '보'가 아이비리그 대신 나미비아행을 택한 것은, '벤'의 '플라톤식 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빛을 발할지 드러날 일종의 무대를 향해 나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전해 온 세레나데 (0) 2016.12.09 어글리 허니(Ugly Honey) (0) 2016.12.07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 (0) 2016.12.02 Viel Glück für ihre Zukunft! (0) 2016.12.02 떠남(Runaway) (0) 201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