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남(Runaway)일상/film 2016. 11. 27. 00:26
<줄리에타/드라마/페드로 알모도바르/나이든 줄리에타(엠마 수아레스), 젊은 줄리에타(아드리아나 우가르테)/99>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은 오랜만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감독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스페인 영화의 세계>라는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아마 처음으로 본 작품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기괴하고 음울하다고 느꼈는데, <욕망의 낮과 밤>, <그녀에게>, <귀향>, <브로큰 임브레이스> 등의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예전만큼 수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평도 있지만, 여전히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에타(Julieta)는 그의 스무 번째 작품인데,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떠올리게 했다. 즉, 그의 전형적 관심사인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브로큰 임브레이스>나 <내가 사는 피부>보다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줄리에타>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묶어줄 수 있는 교집합은 "모성"이라는 요소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일반적으로 "여자"가 참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마음속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하다.
이 작품의 원작이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떠남(Runaway)>이라는 단편집이라고 한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잘 각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영화를 보기 전부터 여주인공의 이름인 "줄리에타"의 의미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주인공의 이름 자체를 영화의 제목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줄리에타"라는 이름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줄리엣"이었다. 영어이름인 줄리엣(Juliet)을 스페인식으로 표현하면 줄리에타(Julieta)가 되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줄리엣과 비교될 만한가 보자면,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여자"가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의 원인제공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남자"다. 과격하게 말해, 그의 작품에서 '여자-남자'의 관계는 '상처입는 자-상처입히는 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善)한 남성들도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줄리에타의 남자친구 로렌소가 그렇다. 그러나 병든 아내를 두고 보모에게 호감을 품는 줄리에타의 친부, 줄리에타 자신이 부재중일 때 외도를 저지른 남편 소안에 이르기까지.(사실 외도 사실에 대해 정황만이 언급될 뿐 정확하게 외도했는지 사실 여부에 대한 언급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줄리에타를 둘러싼 남자들은 그렇게 그녀에게 불행감을 심는다.
결국 줄리에타는 남편 소안과의 불화로 무작정 집을 나서고, 조업중 험궂은 날씨를 만난 남편 소안은 바다에서 되돌아오지 못한다. 이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긴다.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그녀가 평생 마음의 짐으로 느끼는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영화 초반에서 열차에서 마주친 중년남성이다. 불쾌한 인상의 중년남성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자 그녀는 자리를 옮기는데, 어느 순간 그 남자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비록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의 불친절함이 그를 비극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열차 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메타포는 열차를 따라오는 숫사슴이다. 열차와 충돌할까 염려하는 소안에게 줄리에타는 '암컷의 냄새를 맡아 이동하는 것'이라 말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에게 구애하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중에 예의 중년남성이 열차로 뛰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 숫사슴은 곧 중년남성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라고 하면 "원색적인 색감"을 빼놓을 수 없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사용되는 색감도 참 밝은데, <귀향>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색을 걸쳐도 잘 소화해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뛰어났지만 말이다. 주름진 새빨간 블라우스가 줌아웃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역시 알모도바르의 영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같은 경우는 흐드러지는 색(色)의 향연에 몰입된다고 한다면, 알모도바르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색이 지닌 고유의 멋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특히 그는 "빨강"을 많이 활용하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러했다.
그렇지만 영화의 특성상 "파랑"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남편 소안과 마련한 집이 스페인 북부 해안지역인 갈리시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율리시스>에 대한 인용이 등장한다. 율리시스는 여신 칼립소가 불사와 영생을 주겠다는 제안조차 거절하고 바다(Póntos)를 건너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폰투스(Póntos)". 희랍어로 "바다"를 뜻하는 동시에, "모험을 위한 험로"를 의미하기도 한다. 줄리에타와 소안이 함께 마련한 집의 뒤편은 곧장 바다, 즉 폰투스로 이어진다. 그리고 남편은 그 폰투스에서 되돌아오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녀의 삶 자체가 고단한 여정이라는 면에서, 그녀의 삶 전체를 "폰투스"라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튼 폰투스(정확히는 대서양)에 접한 갈리시아의 집은 조개문양의 타일에서부터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파랑"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순백색 또는 개나리색으로 도배된 마드리드의 집과 대비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과 가장 구별되는 점이라면, "해명"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등장하는지의 유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여주인공 마누엘라는 지금은 트렌스젠더가 된 전 남편을 찾아가 지난날에 대한 "해명"을 한다. <줄리에타>에서 여주인공 줄리에타는 그녀를 떠나가버린 그녀의 딸 안티아를 찾아 스위스에 향한다. 그러나 지난날에 대해 "해명"하는 장면까지는 담겨져 있지 않다. ("해명"의 내용은 각각의 영화가 다르기도 하고 지나친 스포일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생략한다)
<줄리에타>에서 무려 13년만에 줄리에타와 안티아의 재회(再會)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딸 안티아가 줄리에타와 동일한 아픔을 겪은 뒤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지난날의 상처를 동병상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실" 그리고 더 이상 "모성"을 행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 이러한 상처를 두 모녀가 공유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줄리에타에게 큰 의지가 되는 것이 로렌소라는 점에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남자가 항상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은 않다는 점을 짚어두고 싶다.
끝으로 아직까지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한 명의 "여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바로 줄리에타의 어머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어머니는 병들고 노쇠해지자 남편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줄리에타는 그런 그녀의 어머니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녀의 곁에서 잠을 청한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난 그녀의 어머니는 줄리에타를 깨우고선, 그녀가 데리고온 딸(그러니까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손녀)를 지그시 바라본다. 한 방에 함께 있는 세 여자. 갓 태어난 손녀는 여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듯, 줄리에타와 그녀의 어머니는 갓난아이를 오묘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글을 쓰고 보니 이런 저런 암시가 많은 영화였다. 여튼 오랜만에 알모도바르 영화를 봐서 좋았다. 최근 작품 중에는 개인적으로 별로라 생각한 작품들이 많아서 알모도바르 작품이라고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맨 처음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감독을 알게 됐을 당시 접했던 작품들의 느낌이 나는 영화여서 다행이었다:p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 (0) 2016.12.02 Viel Glück für ihre Zukunft! (0) 2016.12.02 오랜만의 애니메이션 (0) 2016.11.20 추격(chasser) (0) 2016.11.19 토종을 지켜라 (0) 20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