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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일상/book 2016. 12. 9. 01:11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상>/벤자민 킨/그린비>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미국혁명과 비교하게 만든다. 둘 간에는 분명히 유사점이 있다. 둘 다 급속히 성장하는 식민지 경제의 더 많은 발전을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방해하려는 모국의 지배를 타도하려고 했다. 둘 다 잘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이끌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슬로건과 아이디어를 계몽사상이라는 이념적 창고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둘 다 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모국의 편에 가담해 싸운 내전의 성격을 띠었다. 둘 다 부분적으로는 외국의 지원 덕분에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혁명 사이에는 그에 못지않게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미국혁명과 달리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은 통일된 지도부나 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을 통합을 가로막는 엄청난 거리 등의 지리적 장애물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라틴아메리카 내 지역들 서로 간의 경제적, 문화적 고립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에는 보다 민주적이고 유동적인 영국 식민지 사회가 제공하는 강한 대중적 기반이 없었다. 그 자신들이 백인 소수 집단의 일부였던 크리오요 엘리트들은 억압받는 원주민, 흑인, 혼혈인을 두려워했으며 대체로 이 독립 운동에 그들이 참여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려고 했다. 이 같은 지역적 혹은 계급적 통일성의 부재는 라틴아메리카가 왜 허약하고 여러 국내외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던 에스파냐 같은 국가를 상대로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야 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똑같은 신대륙임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신대륙과 북쪽의 신대륙은 어쩌다 이렇게 다른 경로를 걷게 된 것일까. 인도의 향신료를 찾아 우연히 발견한 남아메리카와 달리, 영국의 청교도인들은 모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새로운 사회 건설하고자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처음부터 정복 과정과 지향하는 비전이 달랐던 이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찍이 라틴아메리카의 '후진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었던 것은 선진국의 여러 학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주장한 것이 "근대화이론"이다. "근대화이론가들이 볼 때 라틴아메리카가 발전에 실패한 것은 대체로 라틴아메리카 자체의 내부적 문제와, 서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오는 근대성의 힘에 자신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근대화주의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발전 경험에서 나타난 이러한 '결함'을 척결하기 위해 국가 관료제 폐지, 예산 적자 축소, 사회적 서비스에 들어가는 지출 감축,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 국가 재원의 사유화, 외국 투자가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자유무역의 장려,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 장려, 이른바 반근대적인 사회집단들의 정치적 힘의 축소 등 대체로 신자유주의적 권고를 반영하는 쓰디 쓴 약을 처방했다."
선진국 중심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즈음. 이를 "종속이론"이라 일컫는다. "고전적 종속이론가들은 애초에 세계 시장을 라틴아메리카가 겪고 있는 빈곤의 원인 제공자이며, 사회주의의 도입 없이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 대표되는 '중심부'에 제3세계로 대표되는 '주변부'는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으며, 이는 '시장'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라틴아메리카가 '주변부'에 속함은 두 말할 것 없다.
"근대화 이론"과 "종속이론"은 각각 한계점을 지니고 있으며, 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각 사회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 채 '근대화' 단선적인 역사적 사명만을 강조한 "근대화 이론", 시민사회의 역할을 무시한 채 초국가적인 사회 요인과 제도적 권력 구조만을 강조한 "종속이론" 각각이 지닌 한계점은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고, 명확해졌다. 물론 우리의 사고방식은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상당히 서구권의 "근대화이론"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저자는 수정된 종속이론의 관점에서, 소시민과 젠더, 인종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불어넣은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Del Porfirismo a la Revolucion,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作>
이 책은 상/하로 분권되어 있는데, 상편에서는 19세기까지의 역사만 다루고 있다. 하편이 20세기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상편보다 더 두껍다. 원래 이 책을 찾아 든 것은 <스페인사>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연결지어서 라틴아메리카사(史)를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려웠다. 내용 자체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적인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더 힘들었다. 심정적으로도 안타까웠고, 머릿속으로도 이 책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 에스파냐 vs. 영국
북미와 중남미가 서로 다른 경로를 걷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모국의 사회제도"다. 예를 들어, 북유럽국가들이 르네상스를 구가하던 시기에 중세의 스콜라철학으로 회귀한 에스파냐의 가톨릭교, 빈약한 제조업 기반, 분열된 지방정부, 이달고(hidalgo : 하급귀족)의 비실용주의적인 가치관, 크리오요(남미 출신 스페인인)와 페닌술라르(본토 출신 스페인인) 간의 반목 등등 에스파냐의 후진성이 남미에 그대로 이식되었다는 점이 라틴아메리카의 후진성을 설명하는 데 거론되곤 한다.
일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조선이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 양반 때문에 망했다"라는 식의 지나친 일반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북미와 중남미의 역사적 경로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원주민의 인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에, 피사로가 잉카에 천연두를 옮기면서 원주민의 인구가 급감했다고는 해도, 중남미에는 여전히 많은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중남미는 유럽인들이 건너오기 전까지는 거대 문명이 번성하던 곳이다. 뿌리 깊은 문화와 역사가 자리잡은 이곳에서 원주민의 정체성을 말끔히 지워내는 것은 생래적으로 불가능했다.
반면 북미지역에서는 원주민의 정체성을 말끔히 지워내는 데 거의 성공했다. 앙드레 모루아의 <미국사>에서도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북유럽인들과 원주민(인디오)간의 마찰에 대해서는 크게 조명되지 않고 있다. 물론 미시시피강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영국간에 벌어진 소규모 전투에 인디오들이 전략적으로 동원되기도 하지만, 인디오 자체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는 크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없어보인다. 그렇지만 북미에서는 남미만큼의 살생이 동원되지는 않았다. 중남이처럼 거대한 왕조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인구가 밀집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아메리카에서 식민화를 진행한 영국인들 또는 프랑스인들이 더 인도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별개의 문제다. 그들도 똑같이 학살을 행했고, 원주민들을 열등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낙인 찍었다.
요컨대, 원주민의 저항을 제압하는 것이 손쉬웠던 북미 지역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의 저항은 훨씬 거셌고, 여기에 이식된 에스파냐의 제도와 시스템이 여러 형태로 변용되고 왜곡되면서 라틴아메리카가 후진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발전 없는 성장"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다.
다만 미국이 독립전쟁을 할 당시에 미국-영국과의 관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가 독립전쟁을 전개할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스파냐, 포르투갈의 관계에서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이미 의회제도가 상당히 자리잡고 있었던 영국에서는 미국에서 적절한 시기에(?) 손을 뗀 반면, 에스파냐 정부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에서 끝까지 손을 떼지 않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Liberation of the Peon(채무 소작농), 디에고 리베라 作>
# 일본의 근대화
"19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식민주의가 승리한 것이 경제적 선발주자로서 유럽이 가진 유리함이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가진 종속이라는 과거의 역사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혹은 필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봉건적 혹은 반(半)봉건적 경제 혹은 사회에서 자치적인 자본주의 체제로의 도약이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일본의 경우가 잘 보여 준다."
책에 나온 구절이다. 사실 '일본'에 대한 언급은 이 문단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때문에 책의 핵심주제와는 좀 벗어날지도 모르지만)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가볍게 읽히지가 않았다.
물론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위로부터 개혁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근대화가 군사적 능력, 산업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소기의 성과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근대화를 라틴아메리카의 근대화와 비교하는 건 비약이지 않을까.
라틴아메리카에는 20세기까지도 '국가적 정체성' 또는 '국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원주민들의 인종적 지형은 메스티소, 물라토, 삼보, 인디오에 이르기까지 점점 다양해져 갔고, 외래인(유럽인)에 의한 사회적, 경제적 종속관계는 청산되지 않았다. 하나의 국가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했고, 이 중 상부계층을 형성한 유럽인들에게 "라틴아메리카"라는 땅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각축장에 지나지 않았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시피,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는 "에스파냐>영국>미국"으로 시대에 따라 달라질 뿐 그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보여주는 모습한 한결같다. "어떻게든 내 몫을 챙겨보자"하는 마인드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도층이 부재한 지역에서 근대화 실패를 논하는 것, 또는 그러한 환경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서구인)들이 이제 와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때문에 제도와 법률을 도입해도 유명무실할 뿐인 이 지역에서, 무엇보다 노예제도가 종식되지 않은 이 지역에서(가장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브라질이 노예제 폐지를 단행한 것이 1888년이다) 애당초 '근대화'라는 단어는 걸맞지 않는 요구사항인 것 같다. 안타까운 사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해야할지, 이러한 선례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편을 읽으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를 더 들여다봐야겠지만, 비극적인 역사를 읽으면서 재밌으면서도(?..정말 아예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구나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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