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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 조지 엘리엇(메리 에번스) / 지식을만드는지식>
오늘날에도 수많은 테레사가 태어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명성을 드높일 서사적 삶을 찾아내지 못한다. 고귀한 정신은 있지만 그런 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실수투성이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의 실패가 아무리 비극적이라 해도 그 실패를 읊어줄 훌륭한 시인이 없으며, 죽어서 잊혀도 그들을 위해 읊어줄 사람이 없다. 그들은 캄캄한 미로 속에서도 희미한 등불에 의지해 고상하게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런 노력도 다만 추상적인 모순으로만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 뒤늦게 태어난 테레사들에게는 그 열렬히 자발적인 영혼에게 지식의 역할을 해줄 일관된 사회적 신념이나 사회적 질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의 열정은 막연한 이상과 평범한 여성의 동경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데, 전자는 몰상식하다고 거부되고 후자는 타락했다고 비난받게 된다.
페이지가 얼마 안 된다 싶었는데, 원전을 완역한 것이 아니라 일부 발췌한 책이라니 아쉽다. 검색을 해보니 <미들마치>는 이 한 권의 책만 확인되었는데, 문학작품이라 함은 원전을 읽어야 깊은 느낌이 온전히 전달되기 때문에 원전을 읽었다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지만, 발췌된 문장들도 잘 정돈되어 있고, 보충적으로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기 때문에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엘리엇(영국 여류작가)"의 작품을 알아보면서 "T.S. 엘리엇(미국 시인)"의 작품도 (단순히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알아봤는데, 아직까지 국내에 이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번역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T.S. 엘리엇의 대표적 시집 <황무지>의 경우에도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국문과 영문이 함께 실린 시집을 읽어보고 싶은데 그런 책은 없는 듯하다. 그렇게 읽으려면 국문 시집 하나, 영문 시집 하나를 각각 따로 사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영시(英詩)는 원문으로 읽을 때의 느낌이 확 다를 텐데 그러한 깊은 의미를 짚어낼 만큼의 영어 실력은 안 되니 말이다.
참고로 앞 문단에서 조지 엘리엇을 굳이 "여류작가"라고 꼬집어 말한 것은, 그녀가 활동할 당시 필명을 사용하여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감췄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조지 엘리엇"은 남자의 이름이다. 그녀의 본명은 "메리 에번스"이다. 그녀가 활동한 19세기 영국사회에서는 여성이 문학작품을 쓴다고 하면, 시쳇말로 "감성팔이" 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남자의 이름을 빌렸는데, 그녀의 본명이 세간에 밝혀지기 전까지 그녀의 작품만을 읽고서는 그녀의 작품을 여성이 쓴 글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또는 "여자 셰익스피어"라 불릴 만큼 남성적인 문체와 시선이 돋보였던 작가였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들마치>에 등장하는 다수의 여주인공들을 보면 조지 엘리엇이 여성의 입장에서 어떠한 여성상을 바라는지 알 수 있다. 허영심 많고 남편의 부에 의존적인 '로저먼드', 한량처럼 살던 남편을 성공으로 이끈 '메리', 자신의 이상이 꺾였음을 깨달은 후 새로운 남성과 결혼하는 '도로시아'에 이르기까지. 비록 완전한 자아실현에 성공한 여성은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이 간직한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노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 그러한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여튼 발췌된 글이다보니 너무 금방 읽어버려서 아쉽다면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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